파리서 영화 같은 은행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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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 파리에서 강도들이 지하 벽을 뚫고 은행에 침입해 약 200개의 개인금고에 든 현금과 귀중품을 챙긴 뒤 달아났다.

영화 ‘다이하드 3’의 악당들이 뉴욕 맨해튼의 연방준비은행(FRB) 지하 금고를 터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TF1 방송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강도들은 지난달 27일 밤(현지시간) 파리 오페라 거리에 있는 크레디 리요네(LCL) 은행 지점의 지하로 잠입했다. 3∼5명의 강도들은 곧바로 은행의 보안요원을 제압해 의자에 묶어두고 드릴 등의 장비를 이용해 개인금고들을 열었다. 이들은 다음날 아침까지 약 9시간 동안 금고를 턴 뒤 개인금고 보관소에 불을 지르고 사라졌다. 이 불 때문에 자동소화장치가 작동해 지하실이 물바다가 됐다.

28일 오전 스스로 결박을 푼 보안요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지하 벽에 사람이 기어서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약 80㎝ 두께의 벽을 이웃 건물 지하에서 뚫은 것이었다.

프랑스 경찰은 이들이 환풍구를 통해 이웃 건물의 지하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피해액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보관품을 개인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보석·현금·유가증권 등 수천만 유로(수백억원) 상당의 피해가 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프랑스에서는 1976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니스의 한 은행에 약 8m의 땅굴을 뚫고 강도들이 침입해 수백억원의 현금을 턴 것이었다. 이 사건의 주범 알베르 스파지아리는 체포돼 재판을 받던 도중 법정의 창문을 부수고 도주해 89년 병으로 숨질 때까지 붙잡히지 않았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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