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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콧대 높았던 율곡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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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재활용하는데 지폐도 재활용될까? 일련번호만 빼고 나면 1만원권은 모두 똑같을까. 앞의 답은 '그렇다'고 뒤의 답은 '아니다'다. 시도 때도 없이 대하고 만지는 돈. 과연 그 돈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아는가.

***인물 초상화는 왜 오른쪽?

한때 우리 지폐도 미국 달러화처럼 한가운데 인물 초상을 넣었다. 1956년 발행한 500환 지폐를 보라.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사진이 가운데 있다. 그게 화근이었다. 돈을 반으로 접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 때문에 얼굴에 금이 간다고 이 전 대통령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초상화의 위치가 한쪽으로 비켜나게 됐다.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인 이유는 우리나라에 오른손잡이가 많고, 또 오른손잡이들은 대체로 오른쪽을 먼저 보기 때문이라고.

***냉면집 사장님 알고 보니 지폐 모델

세종대왕 같은 역사적 인물만 화폐를 장식한 것은 아니었다. 1962년 5월에 나온 100환짜리에는 평범한 어머니와 아들이 등장한다. 모델은 지금 서울 오장동에서 냉면 전문 '흥남집'을 운영하는 권기순(65)씨. 조폐공사를 다니다 그만둔 뒤 알고 지내던 조폐공사 도안실장이 "잠깐 보자"고 해 덕수궁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델 사진 촬영이었던 것이다. 돈 모델이었던 게 복을 불렀을까. '오장동 3대 냉면집 중 하나'로 소문난 권씨의 음식점은 늘 2층까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권씨가 등장한 지폐는 이내 화폐 개혁이 되는 바람에 채 한달도 통용되지 못했다.

***'얼굴 성형수술'한 율곡 선생

72년 처음 나온 5000원권과 77년 바뀐 5000원권은 율곡 선생의 얼굴이 다르다. 원인은 72년 당시 우리나라엔 화폐 인쇄용 철판 조각 기술이 없어 영국에 조각을 맡겼던 데 있다. 영국인 기술자가 코를 높이는 등 서구적 얼굴로 만들어 놓은 것. 77년 우리가 동판 조각 기술을 확보하고서야 율곡 선생은 한국인다운 얼굴을 찾았다.

***모두 다른 1만원권 은선의 위치

1만원짜리 몇 장이 있다면 꺼내 세종대왕 얼굴이 있는 면의 은선 위치를 비교해 보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랬다. 은선이 모두 같은 위치에 인쇄되면 빳빳한 1만원권 100장을 묶어 놓았을 때 은선 부분이 볼록하게 솟아 자칫 돈이 흘러내릴 수도 있기 때문에 취한 조치다.

***돈도 빨래한다

검은돈을 추적하지 못하게 하는 '돈 세탁' 얘기가 아니다. 진짜 돈을 깨끗이 하는 '소독'이다. 순천향대 오계헌(생명과학부)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000원짜리 지폐엔 식중독 원인균 등 병원균 7종 수만마리가 묻어 있다. 이를 약품으로 없애주는 기계를 국내의 한 벤처기업이 개발했다. 현재 농협 서울시교육청지점과 성내동 지점 두곳에 설치돼 들어오는 모든 돈을 소독하고 있다.

***생사 판단은 2심제

지폐가 은행에 들어오면 우선 각 시중은행의 담당자들이 훼손 정도를 살펴 폐기 처분할 것은 한국은행으로 보낸다. 한국은행에서는 기계를 이용해 최종적으로 폐기 여부를 결정한다. 한은 이승윤 화폐관리팀장은 "시중은행에서 보내온 돈 중 약 5%는 재사용 가능 판정을 받아 다시 나간다"고 말했다. 사형 직전에 생명이 연장되는 셈이다. 한국은행에서 하루에 생사를 판별하는 지폐의 양은 약 700만장.

***자동차 바닥재로 재활용

낡은 지폐를 폐기할 때는 우선 파쇄기에서 잘게 썬 뒤 이를 압착해 소시지 형태로 만든다. 보통은 이를 태워버리지만 재활용도 한다. NF쏘나타.카니발.쏘렌토 등의 바닥재 원료로 쓰이는 것. 지폐는 면이 주성분이어서 이를 차량 바닥재에 넣으면 소음이 덜 나고 진동을 막아주며 습기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글=권혁주.김필규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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