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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은 정조의 전속 사진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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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단원 김홍도가 18만 년을 산다는 "3천 갑자 동방삭"이란 신선의 전설을 그린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수명이 늘어난다는 중국풍 신선 모습을 조선 사람의 평범하면서도 익살스런 자태로 바꿔 진경문화의 당당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는 정조 임금의 전속 사진사였다? 그럴듯한 얘기다. 정조는 자신이 직접 가서 볼 수 없는 전국의 경치 좋은 곳에 단원을 보내 사진 찍듯 풍경을 떠오게 해 궁궐에 앉아 즐겼다. '단원이 그림 한 장을 낼 때마다 곧 임금의 눈에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장에 충실한 그의 사실주의는 선배인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풍속화를 마무리하면서 조선 맛이 제대로 밴 세련됨으로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단원은 중인(양반과 상민의 중간 계급) 출신이면서도 스스로 사대부인 척했다? 김홍도는 나라에서 으뜸가는 화가로 꼽힌데다 문예에 두루 능했으니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갈이를 할 때부터 그림을 배우고 솜씨가 뛰어나 왕의 초상화를 그리고 폭넓은 교양에 잘난 남정네로 '그림 신선'이라 불린 만큼 선비라 자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성격이 무던하고 정이 많으며 장난기 많은 인물로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걸작을 많이 남겼다.

우리 옛 화가 가운데 가장 낯익은 단원 김홍도의 이런 전체 모습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단원 대전(檀園 大展)'이 열린다. 1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마련한 봄 정기 기획전이다. 간송이 소장하고 있는 단원 그림 100여 점이 한꺼번에 나온다. 올해는 단원의 탄신 260주년이자 그의 행적이 남아있는 때인 1805년을 기준으로 하면 서거 200년이 되는 해여서 더 뜻깊다. 김홍도 그림의 고갱이라 할 수 있는 인물화를 비롯해 산수.화조.초충 등 평소 보기 어려운 그림이 한 몫에 나와 난만한 봄의 흥취를 더한다.

단원 김홍도 연구에 평생을 바친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2005)은 김홍도를 일러 "한국미의 전형을 이룩한 국민의 화가"라 했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그가 살았던 세상의 태평한 기상이 스며 있으며 자기 문화를 존중하던 시대의 자긍심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준비한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단원은 조선이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는 철저한 의식으로 노자(老子)는 조선 노인으로, 관세음보살은 우리 어머니처럼 그렸다"고 설명했다. 전시와 함께 나온 '간송문화(澗松文華)' 제68권에 그림 해설을 쓴 백인산 상임연구위원은 "품격을 강조하던 사대부와 달리 단원의 사군자 그림은 낭만적이며 정취가 흠뻑 묻어나면서도 속태(俗態)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단원은 조선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화가였던 것이다. 02-762-0442.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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