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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스파이 막아라” 할인행사 007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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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이번 행사에서 가장 저렴한 청바지 값은 얼만가요?”(이마트 심재일 부사장)

“비밀입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청바지 담당 바이어)

지난 16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에서 열린 청바지 할인행사 관련 회의 자리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부사장이 가격을 묻자, 과장급인 담당 바이어는 매몰차게 답을 거부했다. 심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통상의 기업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 사연은 이렇다.

이마트는 다음 달 1일부터 14일까지 전국 127개 점포에서 ‘이마트 정통 진(Jean) 페스티벌’을 연다. 행사 이틀 전인 30일에야 비로소 공개된 가장 저렴한 청바지의 가격은 7900원. 이마트는 최저가 청바지 18만 벌 등 캐주얼 제품 470만 점을 준비했다. 이 행사의 기대 매출은 650억원대. 단일 제품을 파는 것으론 이마트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다.

담당 바이어가 답하지 않은 건 행사의 핵심인 청바지 가격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유통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획 중인 행사 내용이나 제품 가격을 빼내려는 움직임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 사전에 가격이 알려지면 경쟁업체들이 재고 물품을 끌어모아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열며 ‘물타기’에 나서게 마련이다. 당초 행사를 기획했던 업체로선 손해를 보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이마트 실무진은 행사 직전까지 임원들에게도 청바지 가격을 보고하지 않았다. 중국 광둥성에서 생산한 청바지를 국내에 들여올 때에도 혹시 모를 가격 노출에 대비해 가격표를 비워놓았다. 가격표는 행사 일주일을 앞둔 지난 23일부터 붙이기 시작했다. 가격표를 붙이는 아르바이트 사원에게 수시로 보안 교육을 한 것은 물론이다. 이 회사 조윤희 바이어는 “전자업계가 산업 스파이에 대한 보안을 철저히 하는 것처럼 유통업계에선 가격 스파이를 최대한 막기 위해 노력한다”며 “업체마다 한두 번씩은 사전에 가격이 노출돼 손해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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