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증세’에 불과했던 것이 베트남전 이후 정식 ‘질병’이 된다. 귀향한 군인들이 각종 사회적 부적응 문제를 유발하면서다. 이에 1980년대 초 미국 정신과협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공식 병명으로 채택했다. 영화 ‘디어 헌터’는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에 잡혔다가 탈출한 뒤 ‘러시안 룰렛’ 게임에 빠지는 주인공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다. 실베스터 스탤론도 같은 장애를 겪는 ‘람보’를 내세워 돈방석에 앉는다.
최근 이라크 등에 파견된 미군 32만 명이 같은 형태의 크고 작은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장애는 집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독일과 유대인의 ‘나치’에 대한, 일본은 ‘핵’에 대한 트라우마가 대표적이다. 1950년대에 미국을 휩쓴 ‘레드 콤플렉스’도 핵과 냉전의 공포가 유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근래 들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으로 고문·재해·사고·폭력·스트레스 등 다양한 경험이 대두됐다. 서울대병원은 남자의 60%, 여자 50%가 정신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장애가 나타나는 것은 6.7%다. 특히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청소년은 37%가 2년 후에도 장애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공격 성향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 청소년기에 공부와 음악·그림·야구에 대해 부모의 ‘폭력’을 경험한다.
최근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사병의 가족들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겪고 있다. 구조된 장병도 마찬가지다. 잘 극복하지 못하면 자칫 평생 장애에 시달릴 수 있다. 목숨을 끊은 고(故)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도 결국 스트레스 장애를 이겨내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가장 효과적인 치유법은 주위의 정신적인 지지, 그리고 스스로 당시 사건을 돌이켜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