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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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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이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발작을 일으키거나 환청(幻聽)을 호소하는 것이다. 일부는 우울증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의학계는 이를 ‘포격 쇼크증’이라 했다. 제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승리한 연합군과 패배한 추축국,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서 나타났다. 그러자 이를 통틀어 ‘전쟁 신경증’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증세’에 불과했던 것이 베트남전 이후 정식 ‘질병’이 된다. 귀향한 군인들이 각종 사회적 부적응 문제를 유발하면서다. 이에 1980년대 초 미국 정신과협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공식 병명으로 채택했다. 영화 ‘디어 헌터’는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에 잡혔다가 탈출한 뒤 ‘러시안 룰렛’ 게임에 빠지는 주인공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다. 실베스터 스탤론도 같은 장애를 겪는 ‘람보’를 내세워 돈방석에 앉는다.

최근 이라크 등에 파견된 미군 32만 명이 같은 형태의 크고 작은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장애는 집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독일과 유대인의 ‘나치’에 대한, 일본은 ‘핵’에 대한 트라우마가 대표적이다. 1950년대에 미국을 휩쓴 ‘레드 콤플렉스’도 핵과 냉전의 공포가 유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근래 들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으로 고문·재해·사고·폭력·스트레스 등 다양한 경험이 대두됐다. 서울대병원은 남자의 60%, 여자 50%가 정신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장애가 나타나는 것은 6.7%다. 특히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청소년은 37%가 2년 후에도 장애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공격 성향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 청소년기에 공부와 음악·그림·야구에 대해 부모의 ‘폭력’을 경험한다.

최근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사병의 가족들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겪고 있다. 구조된 장병도 마찬가지다. 잘 극복하지 못하면 자칫 평생 장애에 시달릴 수 있다. 목숨을 끊은 고(故)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도 결국 스트레스 장애를 이겨내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가장 효과적인 치유법은 주위의 정신적인 지지, 그리고 스스로 당시 사건을 돌이켜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