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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제완화 뭘 담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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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여당이 확정한 기업 규제 완화 방안에는 곳곳에 고심한 흔적이 배어 있다. '(재벌)개혁의 후퇴' 라는 지적을 덜 받으면서 기업의 경제하는 마음을 북돋우기 위한 절충점을 찾느라고 재계와 팀을 만들어 함께 검토했고 경제5단체장이 모여 논의하는 형식도 취했다.

정부로선 수출이 석달째 줄어들고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가운데 금리인하와 환율정책 등 거시정책을 펴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대책을 요구하면서 재계의 요구를 상당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에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가 풀어달라고 요구한 72개 과제 중 34개를 들어준 것을 놓고 '너무 풀었다' 고 한다.

이에 비해 재계에선 출자총액한도제한과 30대 그룹 지정 등 핵심은 그대로라며 불만을 표시한다.

진념(陳稔)경제부총리는 "출자총액한도제한이나 30대 그룹 지정 제도를 없애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고 전제한 뒤 "이 두 제도의 폐지 여부는 은행이 제 역할을 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는 과정을 보아가며 검토할 사항" 이라고 말해 중장기적으로 폐지할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쳤다.

규제 완화 방안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기업에는 여러가지 제한을 풀어주고, 금융 부문에선 수출에 보탬이 될 만한 내용을 넣었다.

대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함께 만들었다. 정부가 해준 만큼 기업도 자기 개혁을 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정부는 우선 총액출자한도제한 때문에 구조조정이 늦춰지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올 3월 말로 끝낼 계획이었던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된 출자의 예외 인정 시한을 2003년 3월 말로 2년 연장하고, 계열사를 팔아 그 돈으로 새로운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것은 출자총액한도제한에서 빼주었다.

또 새로 30대 그룹에 편입돼 계열사에 출자한 것을 줄여야 하는 기업에 대해선 해소 시한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려주었다. 포항제철.하나로통신.동양화학.태광산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단 올해 새로 30대 그룹에 끼었지만 기존 30대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회사(현대자동차.현대백화점)는 1년 안에 출자를 해소해야 한다.

기업들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1998년 말 잔액 기준으로 묶여 있는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지급보증 한도를 모기업 단위로 묶어 신축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또 종합상사.건설.해운.조선 등 4개 업종에 대해서는 부채비율 2백%를 신축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이후 바뀐 시장환경을 감안한 조치도 있다. 대기업 계열 보험사나 투신사가 갖고 있는 자기 회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주식투자가 완전 자유화하면서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기업이 늘어났고, 이들 기업의 경영에 대한 외국인의 입김이 세졌다. 외국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국내 주주의 의사에 관계없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할 수 있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조치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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