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국감 준비 등 과로사한 공무원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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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07년 국가청소년위원회(현재 보건복지부로 편입) 사무관이었던 강모(당시 38세)씨는 다른 직원들보다 2~3배 많은 문서 업무를 맡았다. 위원회에서 유일하게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기본 업무 말고도 처리해야 할 법률 검토 작업이 많았던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차관회의 준비, 정책보고서 검토, 위원장 지시사항 확인 등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해 1월부터 10월까지 그가 처리한 공문서만 1031건에 달했다. 특히 국정감사 기간인 10월엔 업무량이 더 늘었다. 11명의 국회의원에게 총 16건의 답변서를 보냈다. 10월 한 달간 초과 근무시간이 평소의 4배를 넘었다. 토·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야 했다.

강씨가 쓰러진 것은 10월 말이었다. 중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던 중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면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다 정신을 잃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간 그는 뇌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다음 날 수술을 받았지만 심근경색 증세가 겹치며 사흘 후 숨졌다.

부인 박모씨는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보상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강씨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강씨에게 고혈압 증세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지난해 1월 박씨가 연금공단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의 강연 업무가 병을 일으킬 만큼 과중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동안의 과로와 스트레스 역시 기존의 고혈압 질환을 급격히 악화시켜 뇌출혈을 일으키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행정2부(부장 김병운)는 “강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강씨의 고혈압 증세는 고위험군이 아니었고 그동안 특별한 치료 없이도 건강하게 생활해 왔다”며 “업무 과중으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가 고혈압을 악화시켜 뇌출혈과 심근경색을 유발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제시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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