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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유별과 유친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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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중앙SUNDAY 스페셜리포트의 주제는 ‘공자의 부활’이었다. 기자는 이 특집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유학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오륜(五倫), 즉 다섯 가지 도리는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그런데 ‘부자유별(父子有別)’이나 ‘부부유친(夫婦有親)’과 같은 도리도 ‘말이 된다’고 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 적합한 경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기자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친(親)·의(義)·별(別)·서(序)·신(信)은 원래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다섯 가지 핵심적 인간 관계에서 친(親)을 부자 관계에, 의(義)를 군신관계에, 별(別)을 부부관계에, 서(序)를 연장자-연소자 관계에, 신(信)을 친구관계에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해당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게 유지될 수 있다.”

최근 두 개의 ‘별(別·separation)’을 둘러싼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교(政敎) 분리(separation of state and religion)와 삼권분립(separation of powers)의 문제다.

삼권분립과 관련, 한나라당과 대법원이 충돌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17일 발표한 법원제도개선안은 대법관의 수를 늘리고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반론이 나오고, 대법원도 한나라당과 다른 사법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4대강 문제를 두고 정부와 종교가 충돌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데 이어 25일에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종교계의 성명은 종교계가 ‘정교 분리’의 원칙을 깨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정교 분리와 삼권분립의 원칙은 소중한 원칙이다. 삼권분립이 없으면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통한 민주주의 구현도 없다. 정교분리가 있어야 국가가 종교적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게 세속적 관점에서 정책을 펼 수 있으며 종교는 신앙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원칙이 서구사회에서 자리 잡기까지 수백 년간에 걸쳐 여러 세력 간에 유혈 충돌이 있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빚어진 입법·행정·사법부 간의 갈등이나 정부와 종교 간의 충돌은 서구 역사에 비춰 보면 지극히 평화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입법·행정·사법부 간의 관계나 국가와 종교 간의 관계는 분리가 원칙이다. 그러나 분리뿐만 아니라 협력의 차원도 있다. 부부 관계에 비유한다면 유별(有別)이 우선이지만 유친(有親)의 차원도 있다. 입법·행정·사법부는 함께 국민에 대한 효율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국가와 종교는 자연과 인간의 생명 문제를 두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다양하게 가미됐기에 삼권분립뿐만 아니라 의원내각제의 특징인 ‘권력융합(fusion of powers)적’ 성향도 나타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종교들은 국가·정부와 ‘유친하게’ 상호작용하며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했다. 삼권분립과 정교분리만을 잣대로 내세울 수 없는 이유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