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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열사 의결권' 행사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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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정부가 대그룹 계열 금융기관의 자기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풀어주기로 해 재벌 계열사들이 외국인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맞설 방어수단 하나를 확보하게 됐다.

일부 우량 상장사에 대한 외국인들의 지분율이 상당한 수준에 달해 경영권이 흔들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정부가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의 혜택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일부 대기업 계열사들에 국한돼 당장 주식시장의 수요확충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 외국인의 공격적인 주식매수〓외국인들은 지난해 11조4천억원의 주식을 순매수한 데 이어 올들어 다시 5조3천억원어치의 주식을 거둬들였다. 이에 따라 일부 우량 상장사는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어 외국인들이 똘똘 뭉칠 경우 경영권까지 넘볼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상장사 가운데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은 곳이 15개에 달한다. 금융기관을 제외할 경우 삼성 계열의 제일기획이 59.9%로 가장 높고 포항제철(58.7%)과 삼성전자(58.3%)가 뒤를 잇고 있다.

대표적인 외국인 선호주식인 삼성전자의 경우 1998년 초만 해도 외국인 지분율이 30%를 밑돌았으나 같은해 5월 국내 증시의 완전개방 조치 이후 빠르게 늘어나 현재 60%에 육박하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말 내부 지분을 보면 ▶삼성생명이 7.1%로 가장 높고 ▶자사주 4.2%▶삼성물산 3.9%▶이건희회장 2.0% 등 모두 18.8%에 그쳤다. 그나마 삼성생명 지분은 계열 금융기관 의결권 제한조치에 묶여있던 것을 이번에 정부가 풀어주게 된 것이다.

◇ 주가부양 효과는 없을 듯〓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뒤늦게나마 외국 금융기관들에 역차별을 당하던 것이 해소돼 다행" 이라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계열 금융기관 중 다른 계열사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줄 만한 곳은 거의 없을 것" 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삼성투신운용의 경우 현재 약 4조원의 주식형수익증권을 굴리고 있지만 펀드당 7%로 돼있는 계열사 주식 투자한도를 모두 동원하더라도 삼성전자 주식을 1백20만주(0.8%)밖에 살 수 없다.

키움닷컴증권 안동원이사도 "잠재적인 주식수요가 늘었다는 점에서 시장에 긍정적이지만 기존의 계열 금융기관 보유지분을 확실히 묶어두는 정도 이상의 효과는 없을 것" 이라고 진단했다.

외국인 지분이 높은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 등은 이번 조치를 활용할 계열 금융기관이 없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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