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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 매니어 한국 문화 보여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코스프레란 옷을 의미하는 '코스튬(costume)' 과 놀이라는 뜻의 '플레이(play)' 의 합성어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의상과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다. '코스프레' 라는 일본식 조어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서는 캐릭터 사업의 활성화에 힘입어 코스프레의 열기가 매우 뜨겁다.

국내에서는 PC통신.인터넷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유행했다. 이제 각종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행사는 물론, 10~20대들을 타깃으로 한 홍보성 이벤트에 코스프레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다.

N세대의 스타 모방 심리다, 팬터지의 세계를 등에 업은 자기현시욕의 표출이다, DIY(Do it yourself:재료를 구입, 스스로 제품을 만드는 것)의 결정체다… 코스프레를 둘러싼 구구한 해석이다.

어쨌든 코스프레는 현재 한국의 매니어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가 됐다.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코스프레족(族)중에는 이미 팬클럽과 매니저를 거느린 '스타' 도 있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팬사이트는 물론 안티사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다.

초기에는 거리를 돌며 자신의 의상을 뽐내는 것이 주 활동이었지만, 이제는 소위 '프로' 의 경우 각종 이벤트 무대에서 쇼를 선보인다( '아마추어' 에게는 '포즈 대회' 가 있다).

의상 제작.선곡.안무.리허설 등 행사 준비를 위한 그들의 스케줄을 보면 '작은 연예계' 라는 생각마저 든다. 27일 오후 3시 제1회 코스텍(코스프레+콜라텍)이 열린 대학로의 한 라이브극장에서 만난 유하린(23.위 사진 왼쪽)씨도 수많은 '예비 스타' 중 하나다.

그는 이날 인터넷 동호회 '로열패밀리' 에서 만난 고등학생 동생 두명과 함께 일본 작가 야마다 난페이의 『홍차왕자』를 연기했다.

금색 비단과 레이스 장식이 화려하게 달린 귀족풍의 의상을 차려 입은 세명의 왕자.공주들이 일본 록그룹 말리스미제르의 '월하야상곡' 에 맞춰 무대를 누빈다.

준비해온 안무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 주 내용이지만, 무대 앞에 몰려든 10대들이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 적절한 포즈를 취해주는 것도 플레이어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X-저팬의 음악을 듣고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들면서 코스프레를 시작했다. 코스프레 경력으로 따지면 8년째.

여느 코스프레 매니어들처럼 그간 『오!나의 여신님』『베르사이유의 장미』『소녀혁명 우테나』『카드캡터 체리』『그 남자!그 여자!』『천사금렵구』등 웬만한 레파토리는 다 섭렵했다. 이날 입고 나온 의상은 2주일에 걸쳐 밤을 새워가며 스스로 만든 것이다.

"서툴지만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기쁨이 가장 커요. 내가 만든 옷으로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신나거든요. " 제대로 코스프레를 즐기려면 결국 스스로 옷과 장신구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단 생각에 고교를 졸업하고 직업학교에 들어가 의상을 배웠다. 양장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동호회 회원들에게 직접 옷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정말 즐기는 친구들은 스스로 옷을 만들어요. 바느질이 좀 서툴더라도 양재 교본을 보면서 한두번 해보면 금방 늘거든요. " 반짝이나 구슬 등을 옷에 붙이다 보면 접착제인 실리콘에 손을 데기 일쑤다.

미싱으로 박을 수 없는 합성섬유를 손바느질 할 땐 바늘에 수십 차례 손가락을 찔린다. "그래서 코스프레 의상 만드는 친구들 보면 대개 손이 안 예뻐요. "

대문 시장 등을 누비며 옷감을 고르고 원하는 구두를 사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뒤진다.

『홍차왕자』의 홍차공주 오렌지 피코 역을 하며 신은 금색 구두는 국내에는 적절한 게 없어 이탈리아에 주문한 것이다. 그의 작은 방은 만화책과 비디오, 그리고 그간 코스프레 행사에 참가하며 만들었던 의상 50여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코스프레가 만화만 본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어' 나 '오타쿠' 라는 게 그런 것이지만, 그 역시 좋아하다 보니 알고 싶고 알다 보니 이젠 대충 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게 돼버렸다.

만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려면 단순히 복장만 흉내내서는 '전문가' 가 우글거리는 이 바닥에선 턱도 없다. 각종 서적.비디오 등을 통한 공부가 필요하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연기할 때는 왈츠와 미뉴엣의 스텝을 배웠고, 펜싱 동작과 차 마시는 법 등을 공부했다.

물론 복장만 따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저처럼 로코코풍의 귀족 의상을 좋아한다면 서양복식사를 몰라서는 곤란해요. 이래뵈도 테가 둘러진 패티코트며 속바지.속치마 등 제대로 속옷을 갖춰 입었거든요.

무게가 10㎏도 넘어요. 한번 입었다 벗으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지죠. 영화도 시대물을 유심히 봐요. 촬영할 때 어느 정도 고증을 거친 것들이니 도움이 돼요. "

아마추어 동호회 행사는 물론, 입소문이 나면서 업체들의 이벤트에도 출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핸드폰 회사의 홍보 이벤트 무대에 섰다.

출연료? 액수를 말하기 쑥스러울 만큼 쥐꼬리만한 액수지만 "돈 벌려고 코스프레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 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의 꿈은 코스프레 의상을 제작하는 의상실을 내는 것. 그간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아 의상을 제작.판매해 용돈을 벌었다. '코스튬 메이커' 의 윤현주씨 등 '성공 사례' 를 보면 힘이 난다.

"『바람의 나라』『크레이지 러브 스토리』등 우리 만화도 코스프레로 해보고 싶은 게 많다" 는 그는 내년쯤 『명성황후』를 해보려고 요즘 역사책을 읽고 있다.

글=기선민,사진=변선구 기자

*** 코스프레 의상준비는 어떻게

코스프레 초보자라면 의상을 마련하는 문제가 가장 고민스럽다.

자신이 만들어 입으면 가장 좋지만 여의치 못하면 코스프레닷컴(http://www.cospre.com)등의 전문업체에서 주문하거나 코스프레 동호회의 물물교환 장터를 통해 중고품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격은 쓰이는 재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공주풍 드레스의 경우 10만~30만원선, 세일러복의 경우 5만원선이다. 주름이 많이 들어가는 드레스일수록 값이 올라간다. 보통 재료 구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빼면 열흘이면 한벌이 완성된다.

사진은 코스프레닷컴에 최근 한 여학생이 주문한 비스크 인형의 드레스?와 완성품右. 이 여학생은 다음달 초 열리는 한 코믹페어에 참가할 계획이다. 일단 e-메일로 원하는 캐릭터의 사진을 보낸 뒤 가격을 협상한다. 인건비는 판매가의 30~35% 정도다. 코스프레닷컴은 우송비까지 포함해서 값을 11만원으로 정했다. 재료는 모자를 포함한 드레스에 공단이 일곱마가 쓰였고, 재킷에 자가드가 세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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