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요동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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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일으킨 '정풍(整風)' 파문을 수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던 30일의 최고위원회의는 요동을 쳤다.

한화갑(韓和甲.사진)최고위원이 꺼낸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 보좌 책임론' 과 정풍파의 리더격인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의 '최고위원 사퇴.백지(白紙)출발론' 이 그 한복판에 있었다.

회의의 결론은 "31일 의원 워크숍에서 정리, 매듭지어 보자" 는 것. 하지만 정풍바람이 거세지면서 워크숍을 앞둔 민주당엔 긴박감이 감돌고 있다.

◇ "청와대엔 '내 탓이오' 가 없다"=한화갑 위원은 총무.총장을 지낸 동교동계 신파(新派)의 리더. DJ 비서 출신이라는 '태생(胎生)적 한계' 를 토로하며 '튀는 발언' 을 자제해 왔다.

그러던 그가 작심한 듯 청와대 등 여권의 '내 탓이오' 부재(不在)를 신랄히 지적했다.

"그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정부.당은 물론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도 내 탓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설령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도 '이것은 내 책임' 이라고 나서야 할 것 아닌가. 그런(내 책임이라는) 얘기가 나와야 대통령이 보호된다. "

韓위원은 "정보는 청와대와 정부가 갖고 있지만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나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회의 후 발언의 진의를 되묻자 韓위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안동수(安東洙)전 법무부 장관 문제 때 청와대 인사참모는 물론 내 책임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 의약분업 혼선 때도 장관.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갔다. 어려움에 처하면 '불만 배출구' 를 만들어 주는 게 국민에 대한 권력의 서비스다. 이런 게 없다. " 그러면서 "특정인의 책임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고 강조했다.

당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실무자 문책으로 끝난 의약분업, '安전장관 추천 미스터리' 의 상황을 제대로 정리해야 민심불만을 씻을 수 있다는 게 韓위원의 판단" 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위원도 "책임져야 할 포스트(위치)의 사람이 책임을 져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이자" 고 가세했다.

다양한 해법이 이어졌다. 정대철(鄭大哲)위원은 "책임론보다는 대통령이 심각한 현 상황을 인식하는 자세로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 'DJ스타일' 의 변화를 촉구했다.

반면 이인제(李仁濟)위원은 "사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대립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람직한 제도와 시스템을 논의하자" 고 강조했다.

◇ '백지 출발론' 공방=정동영 위원은 "마음속으로는 최고위원직을 버렸다" 고 주장했다. 김중권(金重權)대표가 " '내가 최고위원이 아니면 나도 (정풍운동에) 서명했을 것' 이라고 한 鄭위원의 입장이 뭐냐" 고 물은 데 답한 것이다.

범(汎)동교동계인 안동선(安東善)위원이 즉각 鄭위원을 향해 "당을 위한 충정과 최고위원 총사퇴가 무슨 상관이 있나. 전당대회를 하자는 얘기인데 무책임하다" 고 반박했다. 김근태 위원도 "아무런 권한도 없는 최고위원들이 책임지겠다면 사람들이 웃을 뿐이다. 정치적 선언보다 실제적 해법을 내놓자" 고 했다.

반면 鄭위원은 "백지 위에 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당 총재에게 프리 핸드(자유로운 선택권)를 드리기 위한 각오를 갖자는 얘기" 라고 '백지론' 을 고수했다.

金대표는 "쇄신할 것은 쇄신하자. 미봉은 안된다" 면서도 "문제를 제기할 때는 풀어갈 방법도 생각하는 지혜를 발휘해 달라" 고 세시간여의 '격돌' 을 마무리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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