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프랑스서도 소장파 항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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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주 프랑스의 집권 사회당에서 작은 항명(抗命)파동이 있었다. 초선의 아르노 몽트부르 의원이 작성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탄핵안에 사회당 의원 19명이 당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명을 한 것이다.

대부분 초선인 항명 의원들은 시라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수사해온 검사 두명이 대통령 면책특권 앞에 백기를 들어버리자 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탄핵을 선택했다. 여기에 사회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과 공산당 의원 11명이 가세했다.

탄핵안을 의회에 상정할 수 있는 정족수 58명에는 못 미치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고려해야 하는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곤경에 빠뜨렸다. 사회당 정부 아래서의 기적 같은 호황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도에서 시라크에 뒤지고 있는 조스팽으로서는 탄핵안이 유권자들 눈에 대선 경쟁자를 겨냥한 정치적 술수로 비치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려했던 대로 시라크가 소속한 공화국연합(RPR) 등 3개 우파 정당들이 "탄핵 움직임은 총리의 사주" 라며 일제히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우파의 모진 반격 속에서 침묵을 지키던 조스팽 총리는 그러나 항명 의원들의 '경솔한 행동' 을 탓하기보다 정공법을 선택했다.

1875년 선포된 제3공화국 헌법에 처음 등장한 이래 점점 강력해진 대통령 면책특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을 제출키로 한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공격을 제도개혁 차원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비난하는 명분도 얻고 오랫동안 논란이 됐던 제도도 고치겠다는 것이다. 고도의 정치력이 보이는 한 수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도 집권당 내에서 항명 파동이 벌어졌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양국에서 벌어진 비슷한 파동을 지켜보면서 그 매듭짓는 방법이 사뭇 다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사회당은 얼핏 정당 내부갈등으로 보일 수 있는 소장파 의원들의 항명 사태를 제도개선의 계기로 만들었다. 당 지도부와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 내분이 있다는 이야기도 없다. 각양각색인 의원들의 개성과 뜻을 존중하는 프랑스 사회당의 당풍이 돋보인다.

물론 정치 현실이 너무도 다른 프랑스의 경우를 우리 정치 상황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항명 배경도 다르다. 하지만 안팎에서 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정당은 물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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