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뉴스 <88> 지방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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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1945년 해방된 뒤 이승만 박사가 귀국하며 한 말입니다. 6월 2일 지방선거는 이명박 대통령에겐 일종의 중간 성적표입니다. 5년 임기 중 2년3개월째에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역대 지방선거 결과는 언제나 드라마틱했고, 정치적 파장도 컸습니다. 대개 합친 쪽은 이겼고, 분열한 쪽은 패했습니다. 지난 네 번의 지방선거 결과와 정치적 파장을 돌아봤습니다.

김정하 기자

1회 지방선거(1995.6.27)
‘포스트 YS’ 노린 권력투쟁으로 민자당 패배

1994년 말 김영삼(YS)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있던 민자당에서 권력투쟁이 발생했다. 최형우 내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민주계가 김종필(JP) 대표의 2선 후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YS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과 세계화에 JP가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였다. 이면엔 ‘포스트 YS’를 노린 파워게임 양상도 전개됐다. 압박을 받은 JP는 95년 2월 민자당을 탈당하고 자민련을 창당했다(나중에 YS는 회고록에서 “정치역정 가운데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6월 27일 지방선거에서 JP는 ‘충청도 핫바지론’을 들고 나왔고 충청권을 석권했다. 15개 광역단체장(울산은 광역시로 승격하기 전이었음) 선거에서 민자당은 5곳에서만 승리했고, 민주당과 자민련은 각각 4곳, 무소속이 2곳에서 승리했다. 자민련은 이듬해 총선에서도 50석을 확보하며 정국의 캐스팅보트로 자리 잡았다. 6·27 선거는 김대중(DJ)의 정계복귀에도 영향을 미쳤다. 94년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해 정계 복귀설이 나돌던 DJ는 지역등권 실현을 명분으로 지방선거 지원유세에 나섰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시장(조순), 그리고 25개 구청장 중 강남·서초를 제외한 23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선거 결과에 고무된 DJ는 그해 9월 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정계에 복귀했다. 위기에 몰린 YS는 95년 말 ‘5·18특별법 제정→신한국당 창당’으로 이어지는 승부수를 던져 이듬해 총선에서 설욕했다.

6·2 지방선거를 70여 일 앞두고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23일 서울 을지로의 한 인쇄소에서 ‘투표 참여 홍보 포스터’ 인쇄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2회 지방선거(1998.6.4)
DJP 연합공천의 위력, 영남 빼고 싹쓸이

‘호남(DJ)+충청(JP)’ 연대로 97년 대선에서 승리한 DJ는 98년 2월 JP를 총리에 지명하고, 6명의 자민련 몫 장관을 기용해 공동정권을 출범시켰다. DJP연합은 98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위력을 떨쳤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연합공천한 후보는 16개 시·도지사 선거에서 서울(고건)·경기(임창열)·인천(최기선) 등 수도권 3곳에서 모두 이겼으며, 전국적으로 10개 지역에서 승리했다. 지방선거에서 서울·경기·인천의 선거 결과가 비슷해지는 ‘수도권 동조 현상’이 이때 생겼다.

한나라당이 당선자를 배출한 곳은 텃밭인 영남 5곳을 제외하면 강원이 유일했다. 그나마 강원도 당초 국민회의가 밀었던 이상룡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민련 한호선 후보와 여권 표를 쪼개는 바람에 한나라당 김진선 후보가 낮은 득표율(39.3%)로 당선될 수 있었다. 지방선거 승리로 탄력을 받은 DJ는 그해 8월 국민신당을 흡수하는 등 본격적인 야당 의원 영입에 나섰다. 지방선거 패배로 동요하는 수도권의 한나라당 의원들을 겨냥한 것이다. 대선 때 78석에 불과했던 국민회의 의석은 105석으로 불어났다. 자민련도 한나라당 의원을 9명이나 영입했다. 그 결과 집권 초 122석에 불과하던 공동여당의 의석은 선거도 치르지 않은 채 98년 말 158석으로 증가했다. DJP는 집권 1년 만에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뒤집은 셈이고, 그 발판은 지방선거 승리였다.

3회 지방선거(2002.6.13)
한나라 ‘정권 심판론’으로 4년 전 패배 설욕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이 통과되면서 DJP 공조가 붕괴했다. 김대중 정부는 정국 주도권을 급속히 상실했다. 2002년 초부터 DJ 아들들(김홍업·홍걸) 비리가 연거푸 터져 나오며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민주당은 드라마틱한 대선 경선을 통해 ‘노무현’이란 히트 상품을 발매했지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부패 정권 심판’ 공세엔 두 손을 들었다. 6·13 지방선거 결과 광역단체장 16곳 중 한나라당은 11곳을 휩쓸었다. 특히 서울(이명박)·경기(손학규)·인천(안상수) 등 수도권에서 전승해 4년 전의 전패를 되갚았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의 약세 지역이었으나 구청장 25곳 중 22곳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경기·인천 41곳의 기초단체장(구청장·시장·군수)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31곳을 이긴 반면, 민주당은 겨우 6곳에서 당선자를 냈다. 자민련은 대전·충북 등 텃밭인 충청권에서조차 한나라당에 밀렸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부산·울산·경남에서 1석을 못 건지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부산·경남의 당 득표율은 초라했다. 이 때문에 노 후보가 내세우던 ‘영남후보 필승론’은 빛을 바랬다. 이어진 8·8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2대 11의 충격적 패배를 당하자 민주당 내에선 후보 교체 움직임이 시작됐다.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논의의 배경이다.

4회 지방선거(2006.5.31)
여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쪼개져 자멸

2006년 5월 2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서울 신촌에서 지방선거 지원 유세를 벌이다 테러를 당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혼선 때문에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벌어진 이 테러 사건은 사실상 선거를 결판 냈다. 한나라당은 4년 전 승리했던 광역단체장 11곳에다 충남(이완구)까지 추가해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을 석권했다. 선거운동 초반만 해도 크게 뒤지던 대전에서 한나라당(박성효)이 막판에 역전승한 것도 박근혜 바람이 불어서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충돌하면서 여권 지지자들이 분열한 게 한나라당의 대승에 기여했다. 한나라당은 전국 시·도지사 투표에서 1041만 표를 획득해 510만 표에 그친 열린우리당을 더블스코어로 눌렀다. 지방선거 사상 최대 표 차다. 한나라당은 서울 구청장 25명과 지역구 시의원 96명을 모조리 당선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강금실)·경남(김두관) 등 6곳에 장관을 내보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이 물러나고 김근태 체제로 전환했지만 이후 재·보선에서도 연패하며 빈사상태에 빠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후 이명박-박근혜-손학규, 빅3의 경쟁 체제가 안착됐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결과는 이미 4회 지방선거에서 예견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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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알고 가세요, 6·2 지방선거

정당과 무관한 교육감 선거 추첨으로 후보 이름만 표시

이번 6·2 지방선거에선 투표 방식이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 꽤 있다.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기 전에 숙지해야 할 사항을 정리했다.

①투표지는 8장

유권자가 받는 투표용지는 무려 8장이나 된다. 원래 1·2회 선거에선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 등 4장만 있었다. 그러다가 3회 선거에서 광역비례대표 의원이 도입돼 5장으로 늘었고, 4회 선거 땐 기초의원까지 비례대표가 생겨 6장이 됐다. 그런데 이번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가 추가돼 8장으로 불었다. 중앙선관위는 유권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투표를 ‘4+4’ 방식으로 두 차례로 나눠 진행할 예정이다. 먼저 교육감·교육의원·광역의원(지역구)·기초의원(지역구) 투표지를 지급받아 1차 투표를 한 뒤 다시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비례대표·기초비례대표 투표지를 받고 2차 투표를 하는 형태다. 선관위는 유권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 8장 투표지의 색상과 크기를 각각 다르게 만들었다.

②교육감·교육의원은 정당과 무관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 많은 유권자가 후보 기호가 정당 기호인 줄 착각하는 바람에 기호 1·2번에 표가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교육감·교육의원 투표지에 아예 기호를 없애버리고 후보 성명만 표기토록 했다. 이름 순서도 과거처럼 가나다순이 아니라 추첨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처음으로 지방선거와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다 보니 교육감·교육의원의 이름 순서를 정당 기호 순으로 오인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선관위는 투표지에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는 정당과 관련이 없습니다’란 문구를 넣을 방침이다.

③기초의원 가·나·다 순서는 정당 결정

기초의원 선거는 유일하게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정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나오는 일이 왕왕 생긴다. 이때 같은 당 후보들의 기호는 1-가, 1-나, 1-다 이런 순서로 표기한다. 예전엔 가·나·다 순서를 후보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했다. 그러나 ‘가’에 배정받는 후보가 ‘나’ ‘다’보다 유리하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 이번엔 공천하는 당에서 직접 가·나·다 순서를 정하도록 했다. 당에서 순서를 안 정하면 선관위가 추첨으로 정한다.

④투표지 촬영 금지

투표의 비밀보호와 매표행위 방지를 위해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 촬영이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다 적발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예전에도 기표소 안에서 휴대전화 등으로 투표지를 촬영하는 행위는 단속 대상이었지만 지난 1월 발효된 개정선거법은 아예 촬영금지 규정을 명문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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