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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지하철에 흐르는 노래 섬세한 과학 숨어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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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발걸음을 재촉하는 출근 무렵 지하철 역. 역사에서 흘러 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바쁜 마음을 쓰다듬었던 적이 있으신지. 얼핏 그런 기억이 난다면, 당신도 어느덧 ‘메트로 뮤직(Metro music)’의 고정 팬이 된 셈이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9월부터 지하철 1~4호선 117개 역사에 하루 세 번씩 음악을 틀어준다. 하나 무심코 듣는 음악이라고 얕보진 마시라. 정밀한 과학적 분석에 따라 선곡표를 짠다. 이용객의 시간별·지역별·연령별 특성을 꼼꼼히 따져 음악을 고른다. 이른바 ‘TPO(Time·Place·Occasion, 시간·장소·상황) 뮤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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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간대를 세 갈래로 나눴다. 출근(오전 7시~10시)·점심(정오~오후 3시)·퇴근(오후 6시~10시) 시간이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KT 뮤직 한경진 뮤직매니저는 “아침엔 출근의 긴장감을 다독이는 경쾌한 음악, 점심 시간엔 템포가 빠른 곡을 주로 틀고, 퇴근 길엔 지친 몸을 달래는 차분한 팝·클래식을 고르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도 음악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같은 출근 시간이라 해도 신촌역과 강남역에선 다른 음악이 나온다. 지하철역 이용객의 특성을 고려해 권역을 네 군데로 나눴다. 대학 밀집 지역인 홍대입구·신촌·신림·혜화역 등에선 ‘캠퍼스 뮤직’이 주로 들린다. 대학생 특유의 발랄함과 어울릴 만한 곡들로 구성됐다. 아침 시간대엔 일본 기타 듀오 데파페페의 ‘페스타(Festa)’와 같은 밝은 연주곡이 들린다. 나른한 점심 시간엔 차이코스프스키·지젤의 왈츠곡 등 익숙한 클래식이 나오고, 저녁 시간엔 존 레전드의 ‘소 하이(So high)’ 등 차분한 멜로디의 팝 발라드가 들린다.

강남·서초·역삼·삼성역 등 기업이 몰려있는 곳에선 30·40대 직장인을 타깃으로 한 음악이 서비스 된다. 출근 길엔 곽윤찬의 ‘아일 비 시잉 유(I‘ll be seeing you)’등 활기찬 피아노 연주곡, 점심 시간엔 영화 ‘도쿄 맑음’의 삽입곡 등 익숙한 씨네마 뮤직이 주로 선곡된다. 퇴근 길엔 B2K의 ‘와이 아이 러브 유(Why I love you)’등 안정감 있는 팝 음악이 지친 몸을 다독인다.

종각·경복궁·안국역 등 유적지 인근 역에선 고즈넉한 음악이 중심이다. 아침 시간대엔 문화 유적지에 걸맞게 장세용의 ‘샤이닝 더 모닝(Shining the morning)’등 잔잔한 뉴에이지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진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낮·저녁 시간대엔 엘가의 ‘사랑의 인사’ 같은 익숙한 클래식과 퓨전 국악이 주로 깔린다. 이 밖에 당산·방배·노원역 등 다양한 연령층이 오가는 역사에선 장르의 편중 없이 경쾌한 클래식이나 퓨전 재즈 등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전 역을 통틀어 우리 대중 가요가 선곡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말 가사가 들릴 경우 오히려 이용객의 귀를 자극해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종 “노랫말이 신경 쓰인다” 등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단다. 대신 서울메트로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곡을 받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는 신청곡 위주로 선곡표를 짠다. 현재까지 총 800여 곡이 신청됐는데, 최근엔 소녀시대 ‘Oh!’가 1위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메트로 영업관리팀 이경준 선임은 “전반적으로 소녀시대·슈퍼주니어 등 아이돌 그룹 노래를 신청하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메트로 뮤직’은 지하철 5~9호선에는 서비스되고 있지 않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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