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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 시민단체 열띤 경제이념 좌담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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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재계와 시민단체간 경제이념 논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달 초 민병균 자유기업원 원장의 '시장경제와 그 적(敵)들' 이라는 글로 표면화한 이후 양측의 공방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양측 모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상적 뿌리라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주장이 크게 엇갈린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과 민경국 강원대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서헌제 바른기업시민운동본부장(중앙대 교수)과 이찬근 인천대 교수 등 대립된 시각을 가진 전문가 4명이 지난 25일 중앙일보에 모여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예정된 시간을 넘기며 두시간여 동안 격론을 벌였다.

한편 자유기업원과 논쟁을 벌여온 참여연대측은 좌담회 참석을 거부했다.

▶사회=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시행된 현 정부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놓고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민경국 교수=국민의 정부와 시민단체가 어울려 추진하는 경제 정책을 보면 과거 어느 정권보다 평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교육.의료 개혁뿐만 아니라 재벌 정책도 마찬가지다. 약자와 강자에 근거한 논리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대기업과 중소기업, 학교 설립자와 교사, 메이저 신문과 다른 중소신문 식으로 대립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서헌제 본부장=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그만큼 심화됐음을 보여준다. 강자로부터 피해를 보는 약자의 반작용이다. 다같이 못먹고 못살 때보다 불평등 문제가 커져 이를 해결해야 된다.

▶김정호 부원장=일부 개혁정책이나 시민운동을 좌익 성향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결과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색채 때문이다. 독재.폭력을 연상케하는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이찬근 교수=개혁정책이나 시민운동을 시장경제의 적으로 보는 것은 대기업의 이기주의의 발로다. 이 뿌리는 극단적인 시장주의다. 반대로 경실련이나 참여연대는 낭만주의적인 시장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과도한 개입도 반대한다. 시장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통제를 필요로 한다.

▶사회=왜 이 시점에서 경제 이념 논쟁을 벌이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사회적인 이념 논쟁은 한풀 꺾인 상태 아닌가.

▶민=현 정부 경제 정책에 늘 사회주의적 이념이 깔려 있었다. 대다수는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시민단체의 행위가 시장경제의 도를 넘었다. 과거 정권도 규제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관성이 없었다. 사안에 따른 응급처치식 대응책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일관되게 가진 자에 대해 규제를 해왔다.

▶서=김영삼 정권 때도 토지공개념 등을 도입해 가진 자에 대한 적대감이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았다.

▶이=경제계 이념 논쟁을 촉발시킨 건 재벌 쪽이다. 지금은 재벌이 현 정권에 반격할 수 있는 주변여건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김대중(DJ) 정부는 환란(換亂)과 함께 출범했다. 따라서 경쟁력의 관점보다는 환란의 주범으로 재벌을 손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3년이 흐르다 보니 수출.투자회복이 어려워졌고, 재벌들은 이런 기회를 노려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서=개혁 피로감도 한 몫 했다.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이 실패하면서 국민의 기대가 무너지자 재계가 이 틈을 타는 것이다. 보수층의 공격 신호탄으로 본다. 일회성이 아니고 앞으로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본다.

▶민=이런 이념 논쟁은 건설적으로 이뤄질수록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될 것이다.

▶사회=구체적인 분야로 들어가보자. 최근 SK텔레콤의 이동통신 가격인하 요구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는데.

▶김=SK텔레콤에 대해 '값을 인하해라' '원가내역을 공개하라' 는 여론.시민단체의 압력은 문제다. 가격은 정부 지시나 여론몰이가 아니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사기업인 SK텔레콤의 프라이버시에 해당한다. 경제 약자는 프라이버시가 있고 강자는 프라이버시가 없어도 되는가. SK가 여론몰이에 굴복해 값을 내리면 다음은 어떤 대기업 상품이 공격 대상이 될지 우려된다.

▶서=지배적인 지위를 이용해 공정한 가격 이상으로 값을 매길 경우 일차적으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 또 시민들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 뭉치는 것은 당연하다.

▶민=공정한 값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이같은 공정성을 위해 시민이 나서 운동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는 있을 수 없다. 수요자와 공급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가격이 결정돼야 공정하다.

▶이=미국도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독점 등을 제재한다. 전기도 '가격 위원회' 를 만들어 통제한다. 시장경제나 자본의 논리대로 기업을 방치할 순 없다. 경제는 정치.사회 논리와 함께 해야 한다.

▶김=SK는 다른 경쟁자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경쟁력이 독점으로 발전했을 뿐이다. 이같은 '사적 독점' 은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자가 나타나면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시장경쟁은 운동 선수의 체급 경기와 다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소비자에게 선택된 기업이 살아 남는다. 이를 불공평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자유기업원은 소액주주운동 등을 좌경화 수법인 '그람시의 진지전' 이라고 공격하는데.

▶서=기업에서 51%의 지분을 가지면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데 나머지 49%의 약자는 배제된다. 소액주주운동은 이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재계가 이를 놓고 노동자가 기업을 통제하려 한다고까지 비판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김=기업의 1대나 2.3대 주주를 빼고 나머지 소액주주는 경영엔 관심이 없다. 소액주주는 주가가 올라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소액주주운동은 지배주주를 경영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게 최종 목적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누가 책임지나. 기업에는 정부.시민단체.전문경영인.노동조합이 남게 된다. 국민 기업화로 가자는 건가.

▶이=총수는 지분이 2%도 안되면서 계열사를 좌지우지해 기업부실 땐 최소한의 책임만 지지만 국민경제 피해는 엄청나다. 대우사태나 삼성자동차 실패가 그 사례다. 총수가 경영에 실패하면 나라가 흔들릴 정도다. 따라서 '안전장치' 가 필요하다.

▶김=안전장치는 은행의 감시로 족하다. 정부나 시민단체가 기업의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만이 판단할 수 있다.

▶이=은행 보고 기업을 감시하라면서 재벌들은 왜 은행 소유를 원하나.

▶김=국내 재벌의 은행소유를 묶어 둬야 한다면 외국인이라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금융기관은 사실상 국유화 상태다.

▶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해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맞서 있는데.

▶민=사외이사를 보면 시민단체.교수 등 경영과 무관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외이사가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주주 이익을 대변할지 걱정이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도 주주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서=사외이사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대주주가 입맛에 맞는 사람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김=사외이사가 경영진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면 회사가 어렵다. 예를 들어 시민단체 출신 사외이사면 기업의 이윤보다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주들만 불행하게 된다.

▶이=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 사외이사를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기업이 책임없이 수익성만 추구할 수는 없다. 재벌 총수의 전횡을 사외이사들이 감시해야 한다.

사회 및 정리〓김시래 산업부차장

<참석자>

서헌제(61)▶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산하 바른기업시민운동본부장▶중앙대 교수▶서울대 법대 법학박사

이찬근(45)▶인천대 무역학과 교수▶스페인 IESE대학 경영학 박사

김장호(45)▶자유기업원 부원장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민경국(52)▶하이에크 소사이어티 회장▶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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