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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새 길 걷는 몽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몽골 하면 먼저 광활한 초원이 떠오른다. 한반도의 7배가 넘는 넓은 국토의 8할이 초원이다. 이같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일찍부터 축산업이 발달했다.

전체 노동력의 4할이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가히 국가 기간산업이라 할 만하다. 가축 숫자가 가장 많았을 때 3천3백만마리에 달해 인구(2백50만)1인당 13마리가 넘었다. 그러나 지금 몽골의 축산업은 침체의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연재해다. 계속된 가뭄과 혹한 특히 2년 연속의 혹한으로 가축 4백만마리가 몰사했다.

이 바람에 유목민들은 생활기반을 잃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수도 울란바토르 교외엔 초라한 게르(이동식 텐트)들이 모여 빈민촌을 형성했다. 이곳 주민들은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면서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현재 몽골의 실업률은 17%에 달한다.

몽골은 사회주의권 붕괴가 피크에 달했던 1990년 공산주의 정당인 인민혁명당이 69년 동안 유지해온 1당독재를 포기하고 민주화와 시장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몽골 국민들은 보다 철저한 개혁을 원했으며 인민혁명당으론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96년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연합이 인민혁명당을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한 것은 몽골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연합은 몽골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잘못된 경제개혁은 국내경제를 파괴했으며 실업자를 양산하고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특히 99년 겨울 혹한으로 가축 2백70만마리가 몰사했을 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와중에도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정치는 불안해 4년 동안 내각이 네번이나 바뀌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민심은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어떤 것이라도 좋다. 생활안정이 우선" 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지난해 7월 총선에서 인민혁명당은 의석 76석 중 7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고, 지난 20일 실시된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인민혁명당은 공산주의 포기를 공식 선언하고 '완만한 개혁' 을 내걸었다.

이와 함께 30년 장기계획으로 국가형태를 바꾸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있다. 인구의 90%를 도시민화하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 2천4백㎞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 축산업은 기업형으로 전환하고 종사자를 인구의 10% 이하로 묶는다.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해외자본 유치, 러시아와 중국 국경에 자유무역지대 설치 등으로 고용을 확대한다.

이는 한마디로 몽골이 전통 유목국가로부터 현대 산업국가로 탈바꿈하는 야심적 계획이다. 몽골인들이 과연 그같은 급격한 변화를 견뎌낼 수 있을지 큰 관심거리다.

오랫동안 초원에서 유목민의 자유로운 생활을 누려온 몽골인들이 현대 산업사회에 적응하는 문제는 민족 아이덴티티와도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몽골에서 일어날 변화는 사회.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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