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갯벌 대 농지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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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각종 노조와 농업관련 단체의 이름으로 "새만금 사업은 환경 친화적으로 계속 추진돼야 한다" 는 광고가 있었다. 두세 신문에는 새만금의 순차적 개발을 강조하는 칼럼이 실렸다. 농림부 산하 단체에서는 개개인을 방문해 사업 진행의 타당성을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고, 마침내 정부가 순차적 개발로 방향을 정했다.

여의도 면적 1백40배의 농지, 매년 1백50만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 매일 2억원씩 드는 방조제 유지비용, 방조제 철거때 투입될 1조3백억원의 3배, 그리고 갯벌만 자연환경이 아니라 농지도 자연과 훌륭하게 어울린다는 주장을 늘어 놓았다.

막연히 새만금의 자연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가져온 나로선 저 주장에 대해 맞대놓고 반박할 논리.자료.대안이 없다. 하나 벙어리가 말은 못해도 속은 있다. 농지 부족의 대책으로 간척사업을 해야 한다면 머지않아 "천수만을 막아서 농지를 만들겠다" 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나는 새만금 개발을 주장하는 이들의 신념을 의심하지 않는다. 만들어진 땅은 순전히 농지로만 쓰여질 것이란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물음은 지울 수가 없다.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농토를 더 만들자는 것인가.

*** 환경단체 소리 귀 귀울여야

농촌을 떠난 사람은 누구며, 내 자식을 농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지금 당장 배가 고프고 입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고, 손으로 잡초를 뽑기보다 제초제를 뿌리는 편안한 삶을 위해 개발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입으로는 우리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중국산 값싼 농수산물을 수입하고 먹어온 사람은 바로 우리가 아닌가. 특히 농촌 총각에게 시집가려는 여자가 없는 풍토를 만든 것도 우리가 아닌가.

새만금을 개발한 후 수질을 보호하려면 인근 도시들의 개발을 억제해야 한단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을 짓지 않아야 한단다. 지금도 낙후지역이라고 억울해하는 지역민이 계속 농사만 짓고 풍월이나 읊으면서 살려고 할까.

*** 후손들이 그대로 놔둘까

농민에 의하면 농사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인건비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투자비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한단다.

그래서 김포 매립지에 공장을 건립하게 해달라는 농지주의 요청이 있은 바 있고, 서산 간척지에도 공장을 지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소유주가 주장한 바 있다. 지금은 완전히 꼬리를 숨겼지만 수년 전에는 새만금도 농지용과 함께 타 용도로도 넓은 토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더욱이 지역민은 방조제가 서해안 물류의 거점항을 만들 수 있게 하리라고 기대한다. 그곳에 부산항이나 인천항 이상의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항구를 만들어 외국을 왕래하는 무역선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항구 주변엔 대형 창고가 끝없이 들어서길 바란다.

여기에서 희망사항이 멈출까. 수출입이 편리하도록 인근지역에 공장들이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작은 구멍이 커져서 큰 댐도 터지게 한다.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이 새만금을 농토로 규정해 놓는다고 해서 2백~3백년 뒤의 후손들도 그대로 묶여 있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갯벌 대신 논밭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먼 미래에는 그게 아니다. 갯벌 대 논밭이 아니다. 갯벌이라는 자연환경 정화장치 대 환경오염 시설이 될 것이다.

나는 무슨 정의의 투사처럼 "반대" 를 외치며 요란을 떨지 못한다. 그러나 환경을 생각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다르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 올라가거나 절두산 절벽에 서서 새만금 중단을 외치는 이, 3보를 내디디고 1배를 올리면서 청와대를 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개인 일을 제쳐두고 자연과 생명의 환경을 위해 나서는 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갯벌이 그렇게 중요한 줄을 몰랐을 것이다. 개발제일주의자들에 의해 압도당했을 것이다.

새만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가 방조제 축조를 재개하더라도 시민 환경단체나 해양학자들의 의견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감시를 받는다면 최악은 피할 수가 있다. 어느 한 정권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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