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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10시간] 일어나라 클론 '강원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잠깐 땅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도 풀썩 먼지가 피어날 듯 가뭄이 심한 초여름 날씨는 사람들을 갑갑하게 만든다.

지난 23일 오후 클론의 멤버 강원래를 만나러 신촌 세브란스 병원길을 오를 때, 유연한 몸뚱이 하나로 신명나게 살았을 그가 장애인의 몸으로 처음 맞는 이 여름을 어떻게 느낄까 생각하니 약간은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환자용과 보호자용 침대 각각 한 개와 컴퓨터, TV, 냉장고를 갖춘 5평 남짓한 1인용 병실은 발디딜 틈이 없는 '삶의 현장' 이었다.

기자가 병실 문을 열 때 강원래는 막 운동하러 갈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물리치료실로 향했다. 허리와 다리에 끈을 묶은 채 서 있는, 매우 단순한 운동이었다. 비장애인에겐 서 있는 게 무슨 운동인가 싶겠지만, 그는 "24시간 중 이렇게 딱 20분을 서 있어 볼 수 있는 거에요" 라며 미소를 지었다.

예상과 달리 그는 매우 쾌활했다. 말도 속사포처럼 빨랐다. 그를 도와주는 물리치료사가 장난삼아 "아저씨!" 라고 부르자 "아저씨가 뭐에요. 병원에 걸려있는 환자권리장전도 못봤어요?" 라며 농담으로 받았다. 게다가 "전 떴어요, 가수가 9시 뉴스에 나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물론 사고때문이지만…" 이라며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가볍게 넘겨보고자 애썼다. 요즘 그는 하루에 5시간씩 재활치료에 매달리고 있다.

운동을 하고 들어오는 강원래를 구준엽이 병실에서 맞았다. 구준엽은 매주 일요일 빼놓지 않고 병원을 찾고 있으며 그 중간에도 틈만나면 병원에 들른다.

"원래하고는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이지요. 열심히 무대에 설 때 우린 서로 얘기 안하고 나와도 옷 색깔이 같았어요. 아쉬운 건 원래를 옛날처럼 툭, 툭 치지 못한다는 거죠. "

가슴 아래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강원래는 약간의 충격에도 몸의 중심을 잃는다. 그의 소원은 초등학교 때 그렇게 자주 했던 '앞으로 나란히 하기' 라고 한다.

구준엽이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가자 강원래도 갑갑하다며 휠체어를 타고 따라나갔다. 경사로를 오를 때를 제외하곤 휠체어 작동은 이제 강원래 자신의 몫이다. 둘은 앞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야, 우리 공부 제대로 못했잖아. 언젠가 공부해보겠다고 작정하고 대들었을 때, 누가 성적 안나왔다고 욕하디?

이번에도 그냥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거잖아. 너 자신감도 키울 겸…. "

"이제까지 힘 좋고 건강한 이미지로 승부를 건 거 아니냐. 그런데 '장애인 되니까 이것 밖에 안되네' 란 소릴 들어야겠어? 난 지금 똥.오줌도 못 가려. "

"알았다. 알았어. 나중에 얘기하자. "

해가 저물 무렵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애인 김송이 강원래의 바지를 벗기고 능숙하게 소변을 받았다. 그리고 강원래는 난자완스.김치.오징어볶음이 반찬으로 나온 병원식으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구준엽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기자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저보다 준엽이가 불쌍하죠. 그냥 솔로로 나서자니 남들이 욕할 것 같고, 제가 기획사에 그랬어요. 클론 베스트 앨범을 만들고 준엽이의 솔로곡을 넣으라고요. '원래에게 바치는 노래' 를 제목으로 하면 자연스럽잖아요. 아니면 그 놈 몸 좋으니까 영화계로 진출시키던지. "

강원래를 남겨 두고 오후 9시쯤 구준엽과 함께 신촌의 한 호프집으로 향했다. 맥주 몇 병과 안주를 주문했다. 솔로로 전향하는 문제에 대해서 물었다.

"솔로 활동 얘긴 서로 안 꺼내죠. 그리고 (제가 솔로로 나서면)원래 그 자식이 얼마나 서운해 하겠어요?

우선 클론의 새 앨범을 함께 낼 겁니다. 곡도 다 준비했구요, 안무도 다 했어요. 원래만 결정하면 끝이에요. "

강원래가 지난해 11월 교통사고를 당한 후 구준엽은 더욱 숨어 들었다. TV 오락프로그램에서도 몇 차례 패널로 나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괜히 자신의 몸이 멀쩡한 게 미안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래서 마신 술때문에 위장병이 생겨 지금 그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우상균 기자

*** '장미를 사랑한…' 펴낸 김송

강원래를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있는 애인 김송(30)은 최근 『장미를 사랑한 선인장』(시공사)을 출간했다.

이 책은 나이트클럽에서 강원래와 처음으로 만난 일, 군대에 있던 그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의 사연, 클론이 뜬 후 교제 사실을 숨겨야 했던 아픔에서 사고 후 심경까지 지난 10년간 그와 나눈 사랑을 기록하고 있다.

서로 만난 장소.시간이 너무 자세히 기록돼 있어 이유를 물어보니 "지난 10년 동안 원래오빠와 같이 한 모든 걸 수첩에 적어놨다" 고 한다.

서로 주고받은 편지만 7백여통이다. 이같은 메모 습관대로 강원래의 투병과정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김송은 강원래의 섭취량과 배출량을 기록한 노트와 강원래의 몸상태를 기록한 노트 두 권을 항상 지니고 다닐 정도다.

'섭취량 : 물 1백㏄, 포도주스 80㏄, 배출량 : 소변 2백㏄' 이런식으로 칸을 나눠 기록하고 있다.

"뭐야, 오늘은 마신 게 더 많잖아. 어떻게 해. "

강원래는 소변이 마려운지 아닌지 조차 감각이 없기 때문에 이런 기록은 필수다. 그리고 또 한권 몸상태를 적은 노트를 펼쳐봤다.

눈에 들어 온 메모는 '정자 검사' . 일주일에 2~3일 정도마다 이 글자가 적혀있다. 지금 김송은 인공수정으로 둘 사이의 아이를 낳는 게 최대의 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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