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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수씨 '오늘의 우리만화' 본상 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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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오늘의 우리만화' 상이 올해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수상작을 냈다. 『슬픈나라 비통도시』(초록배 매직스). 사람의 팔에서 나오는 피로 물총을 채워 쏘는 표지그림부터 도발적이다. 편집 역시 도록(圖錄)같다.

군데 군데 실린 사진과 일러스트 레이션 때문이다. 4백쪽이 조금 안되는 만만찮은 분량에 값도 만화책의 가격이라고는 믿기 힘든 2만원. '저게 팔릴까' 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걱정까지 지레 든다. 작가는 강성수(32.사진). '언더그라운드 만화' 1세대다.

하지만 만화계 경력은 무려 14년째다. 1987년 '뛰어라 빠가사리' 로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의 신인만화가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아버지와 아들' 을 『보이스 클럽』『미스터 블루』『빅 점프』등 성인지에 장기 연재했지만 단행본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1990년대 후반에 그렸던 단편들을 묶었다.

독자에겐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만화동네에선 "성수가 책을 냈다" 는 게 뉴스다. 심사위원들도 "독창성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산물" 이라고 극찬한다.

"이런 만화도 있어요. " 책이 독특하다는 말을 건네자 돌아온 그의 대답이다. '다양성' 은 활동 무대가 상업지이든 언더잡지이든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다. "재미를 잃지 않는 한 소재와 주제 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의 문을 두드려보고 싶다" 고 말한다.

『봄』『히스테리』 등 언더 잡지 활동을 활발하게 했지만 독자들과 소통하는 지점은 대단한 구호나 선정적인 몸짓이 아닌 바로 '재미' 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눈물.콧물 있는 대로 다 짜내게 하는거나 뒤집어지게 사람 웃기는 거나 어느 경지 이상에 이르면 모두 '예술' 이겠죠. "

『슬픈 나라…』엔 외양은 '엽기' 지만 한꺼풀 들추면 우울한 내용이 많다. 제목도 '슬픔의 덩어리' 를 표현한 것이다. "한 나라만큼의 슬픔과 한 도시만큼의 비통" 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슬픔과 비통은 이 시대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실감하는 작가 강성수의 감수성이다.

가령 정권 교체 때마다 느꼈던 "사람은 바뀌어도 땅은 안 바뀌는구나" 싶은 절망감, 97년 청소년 보호법 시행과 함께 시작된 만화에 대한 검찰의 '마녀사냥' 이 준 울분 등은 그의 작품에 물을 주고 거름을 뿌려주는 정원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단일 캐릭터로 장기 연재하는 게 목표라 단행본을 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십수년간 만화가 강성수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들을 이제는 한번쯤 보여드리고 싶어 책을 냈어요. 이왕 어렵게 준비한 책, 많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

글=기선민,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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