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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현대중국, 영화로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현대 중국,영화로 가다』는 중국의 영화와 역사 속 인간의 삶이 마주치는 현장에 눈을 맞춘 책이다.

정보량과 읽을거리로 손색이 없는 이 책의 텍스트로 사용한 영화는 관진펑(關錦鵬) 감독의 ‘롼링위’,허우샤오셴(侯孝賢)감독의 ‘비정성시’를 비롯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진 천카이거(陳凱歌)의 ‘패왕별희’,장이머우(張藝謀)의 ‘붉은 수수밭’ 등 비교적 국내에도 익숙한 작품들이다.

분석의 대상으로 오른 이들 작품들은 한결같이 현대 중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작들이다.작가는 이들 영화 속에 내재해 있는 사회성과 역사성을 좇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난 세기 도도했던 제국주의의 흐름에서 중국인이 걸어야 했던 복잡다기했던 상황이 저자의 세련된 지식에 힘입어 조용하면서도 밀도 높게 복원된다.

책은 1930년대의 국제적 도시였던 상하이(上海)의 전설적인 여배우 롼링위에서 시작해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고 중국의 품으로 돌아간 홍콩 영화에서 이야기를 맺는다.

사회주의 열풍이 휩쓸고간 대륙의 상황,국민당 정권에 의해 처절하게 희생당해야 했던 대만인,식민지적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아 움직인 홍콩사람들의 상황이 골고루 그려진다.

책이 지니는 강점은 중국 근·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일본 도쿄대 문학부 교수로 있는 저자의 중국에 대한 수준 높은 인식이다.각 영화의 원전에 해당하는 소설들에 대해 저자가 유지하고 있는 높은 이해력이 영화 스토리의 이곳저곳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마오쩌둥(毛澤東)식의 거친 사회주의 폭풍에서 해체의 운명에 올라서야 했던 중국 가정의 비극을 담은 ‘푸른 연’(톈좡좡 감독)을 다루면서 저자는 영화 속의 동요 한마디를 소개한다.‘늙어서 날 수 없는 까마귀는 아들 옆에서 울고 있다.

…아들은 날마다 먹이를 구해 맨 먼저 엄마에게 먹인다.자기는 먹지 않고 참는다.옛날에 받아 먹었으니까.’저자는 이렇게 영화 자체가 가져다 주는 ‘울림’도 책에서 소개한다.책을 읽는 재미를 한껏 높인다는 의도다.

중국 북부에서 공연되는 경극(京劇)과 남부의 월극(越劇)이 어느 영화에서 뒤바뀌어 나오는 점,마오쩌둥 흉상이 소품으로 잘못 다뤄지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한 대목은 저자의 관찰력과 지식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불만도 있을 수 있겠다.영화와 역사,중국인의 삶을 함께 다루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정밀하게 파고 들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점 때문이다.

특히 대만영화 ‘음식남녀’(리안 감독)를 다루면서 스토리가 지니는 의미보다는 영화 속 소재에 불과한 중국요리를 한껏 부풀려 이야기하는 대목은 눈에 거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시대별 큰 주제를 별도 항목으로 풀어 설명하고 원전 소설과 영화 스토리를 넘나들며 현대 중국인의 삶을 충실히 그려냄으로써 책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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