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왜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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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안동수(安東洙)전 법무부 장관의 충성 서약 문건 파문을 마무리하는 여권의 솜씨가 한심하다. 사나흘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온 국민을 허탈감에 빠지게 했는 데도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이곳 저곳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쁜 형국이다.

이래서야 앞으로의 인사에서 이런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또 安씨 파문은 일과성의 해프닝에 불과했다고 어찌 주장할 수 있겠는가.

安씨를 추천한 책임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청와대가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는 모습은 차라리 안쓰러울 지경이다. 청와대는 민주당 지도부 중 누군가를 겨냥하는 듯한 인상을 줬고, 당에서는 "절대로 우리가 추천하지 않았다" 며 청와대에 불만을 터뜨렸다.

당측은 오히려 인사를 검증하는 시스템이 고장났거나 잘못된 정보가 대통령에게 올라갔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분명히 추천자가 있을 것이고, 安씨의 경력을 검증한 곳도 있을텐데 누구도 '내 탓' 이라고 나서지 않으니 희한한 일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을 '언론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 탓' 이라거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 때문' 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도덕불감증이 이미 치유 불능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어제 安씨 추천자를 문책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은 상황을 안이하게 대처하는 지도부에 대한 도전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이들은 성명서 첫 부분에 지금의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규정했다.

오죽했으면 이들이 대통령 보좌 기능의 문제와 비공식 라인에 의한 인사를 비판하는 등 항명(抗命)으로 비춰질 수 있는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을까.

초선 의원들의 '거사' 에 지도부는 "더 이상 문책론을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 며 사태 봉합에 급급했다. 당장 이들의 입을 막으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철저한 내부 반성을 통해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는 일대 결단이 있어야 민주당과 국민에게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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