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우리 시대의 화흠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예나 이제나 지식인들의 현실참여엔 탈도 많고 말도 많다.

후한(後漢)말 나라가 어수선하던 시절 글 잘하는 두 젊은 선비가 있었다. 한사람은 관녕(關寧)이고 다른 한사람은 화흠(華歆)이라 했다. 두 사람이 어느날 밭을 매는데 밭고랑에서 금덩이가 나왔다. 관녕은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화흠은 그걸 주워들고 한참 들여다보다 버렸다.

*** 지식사회 싱크탱크 논란

하루는 두 사람이 함께 글을 읽고 있는데 바깥에서 귀인의 행차소리가 들렸다. 관녕은 그대로 책을 읽고 있는데 화흠은 보던 책을 집어던지고 구경하는 데 급급했다. 뒷날 한나라가 위에 망하자 관녕은 위나라 땅을 밟지 않겠다며 평생을 정자에 드러누워 지냈다.

그러나 화흠은 먼저 손권(孫權)을 섬기다 나중에 조조(曹操)에 붙어 한나라 마지막 황제의 황후를 끌어내 죽이는 등 정권찬탈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지식사회의 현실을 보면 문득 『삼국지(三國志)』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슨 팀이니 무슨 회니 하는 비밀 싱크탱크 소문이 들리곤 했었다. 그리곤 청와대 요직이나 정부 각료에 발탁된 교수.학자들의 배경을 들어보면 대강 그런 모임에 은밀히 참여해 '공' 을 세웠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케네디 시절 하버드대 출신들이 대거 정부에 출사했었고 요즘엔 예일대 인맥이 거론된다. 대학이나 연구소 또는 월가나 기업현장에서 오랫동안 닦은 전문지식을 국가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필요하고도 바람직스런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지식인의 정치참여는 감투나 노리는 지식인의 변절로 여겨지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박정희시대의 유신지지 지식인들, 3공 말 권력자 차지철(車智澈)에게 줄을 대려고 기쓰던 지식인, 그리고 全.盧 군사정권의 권력찬탈과 부패한 권위주의에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하던 지식인들의 왜곡된 행태 때문일 게다. 그들은 비합법적 권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부와 감투의 보상효과를 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풍토가 문민정부에서도, 이 정권에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한때 야당의 민주화투쟁이나 진보노선을 용감하게 옹호했던 지식인들 중 일부는 '줄을 잘 선' 덕분인지 장관자리.국가기관이나 정부산하단체의 장자리, 하다못해 연구소라도 차지했다.

그것이 자칫 야당 편든 게 소문나면 감투는 고사하고 자리보전조차 힘든 우리네 풍토에서 접선하듯 비밀회의를 하고 비밀보고서를 올렸던 그 모험에 대한 응당한 보상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한나라당이 국가혁신윈가를 만들고 거기에 참여했다는 2백여명의 교수.학자들 이름이 나돈다. 이를 두고 여당은 마치 '국가' 라는 단어는 그들 외에는 쓰지 못하게 특허라도 낸 것처럼 아우성이다.

사정당국이 뒷조사를 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만약 과거처럼 현실참여에 나선 지식인들이 그들의 전문지식을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나라당 총재가 다음 대선에 유력하다니 줄대기라도 하겠다는 속셈이라면 더욱 문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식인들의 현실참여가 떳떳하게 이뤄질 수 없게 만드는 풍토일 게다. 지식인들을 편가르고, 개혁을 빙자해 권력에 의한 지식의 침묵을 강요하는 지식사회의 정치오염이 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소리 높여 외친 민주, 그들이 옹호했던 비판정신이란 결국 지역과 이념의 편향성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 줄서기식 참여하면 안 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도쿄(東京)대의 교양학부용 교재 '지(知)' 시리즈엔 이런 대목이 있다. "知가 행하는 정치적 행위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비판입니다. … 知는 상대를 말살하는 '총동원체제' 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저항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과연 우리의 知는 그러하며 우리의 지식인들은 그러한가. 군사권위주의에 대한 지식의 저항과 권력을 동원한 비판의 말살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대선이 다가오니 권력을 좇는 우리 주변의 화흠들은 또 날뛸 것이다. 관녕이 위나라땅을 밟지 않겠다고 정자 위에 드러누워 지냈다지만 그 정자는 위나라땅에 세워진 것이 아니던가고 비아냥댈는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숙맥처럼 줄 설 줄 모르고 서책 냄새에 전 연구실 구석에서 눈물이 나도록 모니터를 지켜보는 우리 시대의 관녕들이 우리 지식사회의 주축이라고 믿는다.

김영배 논설위원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