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식 통로'가 예지학원 참사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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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소년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예지학원 화재는 또다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그대로 드러낸 어이없는 참사였다. 불이 난 교실은 학원측이 1992년 2월 옥상에 창고용으로 지은 30여평짜리 블록 가건물. 그러나 지난해 3월부터 교실로 사용됐다.

비슷한 시기에 옥상 출입구와 이 가건물의 출입문을 잇는 폐쇄식 통로를 만들어 휴게실과 흡연실을 설치했다. 철판과 합판으로 천장과 벽이 둘러쳐진 5m 길이의 이 통로가 가건물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17일 현장 감식반 관계자는 "흡연실 쓰레기통에서 발화돼 합판으로 번지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 같다" 면서 "학생들이 이 연기에 질식한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이 통로가 없었다면 질식사가 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관할 교육.소방 당국의 점검도 허술했다. 지난해 7월 이 학원의 운영실태를 점검한 광주교육청은 "5층 창고를 교실로 사용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점검 당시엔 이미 창고를 교실로 바꾼 상태였다.

하남소방서는 지난해 9월 소방점검 후 '적합' 판정을 내렸다. 소방서 관계자는 "이 건물은 층마다 화재탐지설비와 소화기 두 대를 비치하면 될 뿐 자동살수기를 설치할 의무까지는 없다" 면서 "창고를 교실로 이용한 건 소방서의 단속사항이 아니다" 고 말했다. 광주시청측도 "지난해 건축법 완화로 창고를 교실로 용도변경하더라도 불법은 아니며 신고 사항도 아니어서 몰랐다" 며 책임을 회피했다.

한편 이 건물은 화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데다 건축주 崔모(53)씨와 학원장 김태경(60)씨가 별다른 재산이 없어 유족에 대한 보상마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성시윤.남궁욱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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