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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전자공고 학생들 동래학춤 맥 이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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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4일 오후 5시50분 부산전자공고 운동장.

굿거리 장단에 맞춰 북과 꽹과리 소리가 울려퍼지자 치렁치렁한 흰색 도포에 갓을 쓴 춤꾼들이 땅을 박차고 솟아오른다.

중간 중간에 "나르디(날아라),나르디…."를 뿜어내는 앳된 여성의 목소리(구음)가 흥을 돋운다.춤꾼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학(鶴)무리다.흰색 바지저고리에 도포를 입은 모습도 그렇지만 춤사위가 학의 동작을 그대로 닮았다.

이 학교 민속부 학생들이 방과 후 동래학춤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동래학춤은 동래지역의 한량들이 놀이마당이나 사랑방에서 췄던 춤이며 우아한 춤사위가 일품이다.동래학춤은 춤 중간 중간에 넣게되는 구음과 춤을 추는 무수,사물(북 ·꽝과리 ·장고 ·징)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종합예술이다.1972년 부산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부산전자공고 민속부는 올해로 20년째 동래학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매년 신학기에 20여명의 신입생들이 민속부에 가입한다.민속부 학생 43명이 방과 후 구슬땀을 흘리면서 학춤을 익힌다.연습이 길어지는 날은 4∼5시간씩 땀에 젖어가며 조상의 혼을 이어받는다.

동작 하나하나 익히기가 쉽지 않아 상당한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그러나 1년만 열심히 배우면 외부 공연에 나설 수 있는 등 부수적인 효과가 많다.

내고장 전통예술을 이어간다는 자부심 외에도 건강과 신체미용 효과가 뛰어나다.춤 자체가 기본적으로 뛰고 돌고 날으는 춤동작을 연속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수 윤희효(尹熙孝 ·3년)군은 "선비처럼 고상하면서 기품있는 춤을 배울수 있어 좋고 인내력과 체력이 아주 좋아졌다"며 "3년간 익히고 나니 몸매가 날씬한 근육질이 됐다"고 자랑했다.

장고를 치는 오민주(吳珉珠 ·2년)양은 "사회에 나가면 배울 시간과 기회가 잘 없을텐데 학교에서 배울수 있어 행복하게 생각한다"며 "특히 여학생들에게는 다이어트 효과가 만점"이라고 말했다.

민속부 출신 학생들은 졸업 후 전통예술과 관련된 일(이벤트업체 등)을 하거나 취미로 활용한다.민속부 1기였던 김태형(37)씨의 경우 평소에는 삼성전자 애프터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면서 학춤을 계속 익혀 지금은 동래학춤의 '준예능보유자'가 됐다.

정현섭(鄭鉉燮)지도교사는 "동래학춤은 기능이어서 한번 배워놓으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며 "사회에서 장기자랑 때 보여 줄 수도 있고 건강증진 ·심성교육 ·전통계승 등 여러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의 맥을 잇는 학교는 부산전자공고 뿐 아니다.

초등 2곳 ·중학교 4곳 ·고교 11곳 ·대학 3곳 등 부산시내 21개교에서 1천1백여명이 10가지의 무형문화재를 익히고 있다.이들 21개 학교는 무형문화재 전수학교로 지정돼 있다.

부산해사고 농악부 학생 75명은 1986년부터 부산농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다.

이 학교 곽상희(郭尙熙)지도교사는 "요즘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고 그를 통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는다"며 "외부 공연만 있으면 방학이나 일요일도 마다하고 뛰어나온다"고 말했다.

특히 농악을 배우면 학생들의 생활이 건전해지고 '사고'를 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이들 학교에는 외부의 공연 요청도 줄을 잇는다.한해 30∼40여건에 이르지만 공부에 지장이 있어 10∼12회 정도만 받아 들인다.

부산바다축제 ·전통민속공연 ·국제영화제 등 각종 축제나 행사가 이들의 무대다.

무형문화재 전수학교 강사들은 대부분 기능보유자 등이어서 학생들의 기능 수준이 대단하다는 평가다.

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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