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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출 문화재 절반 이상이 일본 소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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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유네스코 산하 ‘문화재 반환 촉진 정부간 위원회’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제국주의 식민 침탈 당시 불법적으로 약탈한 문화재는 원소유국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문화재 반환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약탈임을 우리가 입증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고, 약탈이라 해도 국제법상 강제로 환수할 방안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반출 문화재의 과반수가 몰려 있는 일본의 경우 1965년 한·일협정이 외교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1400여 점만 돌려받고 문화재 청구권을 포기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 사무처장 혜문 스님은 “한·일협정 때 돌려받은 유물 중엔 짚신·막도장·우체부 모자 등 문화재적 가치가 의심스러운 것들이 포함되는 등 구색 갖추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라마탑형 사리구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 도굴로 일본에 건너간 문화재를 보스턴 미술관에서 사들였다. 석가모니 진신사리와 지공스님·나옹스님의 사리가 봉안된 유골함이다.

해외 문화재 환수 분야에선 국가보다 민간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06년 돌려받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도 혜문 스님을 주축으로 한 민간운동에서 촉발됐다.

현재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과 ‘조계종 중앙신도회’에서 함께 환수운동을 벌이는 문화재는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라마탑형 사리구다. 라마탑형 사리구는 13세기 경기도 양주 회암사의 부도에 안장됐으나,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일본인에 의해 도굴로 밀반출됐다. 이를 보스턴미술관이 사들인 것이다.

혜문 스님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사리구는 신앙의 대상이므로 돈으로 사고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돈을 주고 매입했다고 해서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할 수 없다”는 논리로 미술관 측을 설득해 사리를 반환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사리만 돌려받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으므로 사리구도 함께 돌려받아야 한다”며 환수를 거부한 바 있다.

외규장각 도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갔다. 문화연대가 프랑스 행정법원을 상대로 2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문화연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 환수운동을 벌이고 있다. 병인양요 때 약탈된 문화재다. 1992년 한·프랑스 정상회담에서 반환하기로 약속했지만 18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천 향교 5층석탑’도 수탈된 문화재로 꼽힌다. 경기도 이천의 향교 앞에 있던 이 석탑은 1918년 조선총독부의 형식적인 승인 절차를 거쳐 도쿄로 반출됐고, 현재 슈코칸이란 사설 박물관에 놓여 있다. 소설가 전광용(1919~88)의 단편 ‘꺼삐딴 리’(1962년)에는 한국인들로부터 수준급 문화재를 뇌물로 받는 ‘브라운’이라는 미국인 외교관이 나온다. 이는 ‘헨더슨’이란 실존 인물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하버드대 아시아박물관 아서 새클러 뮤지엄에 소장된 ‘헨더슨 컬렉션’ 중 도자기 150여 점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고 있다. 약탈 문화재는 아니지만 문화재 반출이 자유롭지 않던 때라 불법 여부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이천 향교 5층 석탑 경기도 이천에 있던 석탑을 일제가 1915년 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를 열면서 경복궁으로 옮겨갔고, 3년 뒤 일본으로 유출됐다(左).
고려청자병 미국 하버드대 아서 새클러 뮤지엄 소장. 미군정 시절 문정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의 컬렉션. 외교관 직위를 이용, 국보급 문화재를 대거 반출했다(右).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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