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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씨 23년만에 구도소설 '꿈' 펴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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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무엇을 기다리는가. 진실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새벽부터 새벽까지, 그리고 또 새벽부터 새벽까지 내가 혼을 기울여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를 이루기 위한 커다란 깨달음의 세계인가. 평생을 걸려서라도 단 한 장의 그림으로 건지고 싶은 관음보살의 미소인가. 영육을 던져 한자루의 뼈로 합쳐질 수 있는 완전한 여인인가. 혼의 문학인가. 죽음인가. "

19세 때 출가해 10년간 수행정진하다 1976년 불문(佛門)에서 쫓겨난 소설가 김성동(54)씨. 불교소설 현상모집 당선작이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한 파계승을 통해 멀고도 험한 구도 과정을 그린 장편 『만다라』로 세간에 화제를 뿌리며 불문에 또 한번 파란을 일으켰던 김씨는 "현실을 뒤로 하고는 어디서도 정토를 찾을 수 없다" 는 깨달음으로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바탕을 둔 소설을 발표해왔다.

그런 김씨가 불교를 소재로 한 구도 소설로는 『만다라』이후 23년 만에 다시 장편 『꿈』(창작과비평사.8천원)을 최근 펴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승려가 묻고 있는 바와같이 작가 자신도 지금껏 부처와 같은 큰 깨달음, 중생의 모든 아픔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미소, 남녀의 완전한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혼의 문학' 을 기다려 왔다. 문학을 통한 구도의 길 위에서 내놓은 작품이 『꿈』인 것이다.

고교 졸업을 몇달 앞두고 자퇴한 후 입산, 10년 가까이 수행정진하던 능현 스님 앞에 여름방학을 맞아 절을 찾은 여대생이 나타난다. 관음보살의 현현인가, 그녀의 자태 앞에 10년 공부도 혼미해진 능현. "염불이 결국은 노래가 아닌가요.

세상이 슬프고 세상이 괴롭고 세상이 또 막막한 중생들이 듣고 그 슬픔과 괴로움과 막막함에서 벗어나라고" 라며 염불이 아닌 노래를 불러달라는 여대생의 말에 정수리가 쪼개지는 듯한 깨달음을 얻는 능현.

3년후 능현은 그녀와 다시 만나 깊은 산속 토굴에서 수행한다. 남녀간의 살가운 정을 누리며 '파계' 는 했으되 구도의 길에서는 벗어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행복도 잠깐, 그녀는 한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능현은 그녀를 찾아 헤맨다. 그녀와의 만남이 꿈 속이었는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상이었는지의 분별 없이 이 소설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다.

물론 이 작품의 요체는 젊은 승려와 여성 사이의 애틋한 사랑이라는 줄거리에 있지 않다. 그 이야기 행간에 녹아 있는 참선의 의미와 선승들의 가르침 등 구도 과정이 독자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선연하게 들어온다.

거기에 잊혀져가는 아름다운 우리 본디말을 갈고 닦은 작가의 노력과 정련된 문체가 한번 읽고 지나가기에 아까운 문학의 예술성을 발휘하게 만든다.

문학예술로서의 소설의 깊이와 향취에 갈증난 독자들에게 권하고픈 작품이다.

작가 김씨는 요즘 집도 절도 없이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신세로 서울 근교 암자에 살며 소설로써 도를 이루려 하고 있다.

이경철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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