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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신약개발 황금기가 오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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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53년 왓슨과 크릭에 의해 DNA의 구조가 밝혀진 이래 지난 50년간의 생명과학은 유전자 연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로 인해 많은 생명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으며 생명과학은 21세기 첨단 과학을 주도하는 위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유전자의 기능에 대한 단순한 해석과 맹목적인 신뢰로 인해 유전자 결정론적 사회 문화가 형성돼 왔으며 이는 우생학.인종 차별 등 잘못된 역사에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피하고 싶어하며 문제의 해법 또한 간단하고 명료해 자신에게 빨리 이해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전자 결정론은 매우 매력적인 생명의 해법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따라서 생명과학자들은 유전자의 사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마침내 21세기 벽두에 인간유전자 전체 지도를 완성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이 지도가 무병장수라는 인류의 공통적인 소망을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과학의 청사진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생명체는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기작에 의해 운용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중요한 유전자나 단백질.줄기세포 등을 발견하고 개발했더라도 이들이 작용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면 실제로 우리 몸에서는 기대와 다르게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며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부작용과 반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기대와 관심을 끌었던 수많은 생명과학의 기술과 물질이 신약이나 치료법으로 현실화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간 생명과학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조각들을 찾아내어 분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인간 유전자 지도의 완성은 이러한 노력에 한 획을 긋고 생명과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음을 선포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생명과학의 연구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조각들이 서로 작용해 생명을 운용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컴퓨터에서 그 하드웨어들을 유기적으로 움직여주는 운용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생명의 운용시스템을 이해해야만 새로 개발한 약물이나 유전자.단백질.세포 등이 체내에서 일으킬 수 있는 반응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이 가능해지며 역으로 운용시스템을 바탕으로 신기능의 약물을 디자인할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생명공학은 생명을 구성하는 '하드웨어'와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가 복합적으로 고려될 때 '생명공학=불확실성'이라는 공식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명의 조각 찾기' 연구는 거대 자본과 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이 주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진행될 '생명의 원리' 연구는 아직도 과학자의 지적 능력, 통찰력, 통합적이고 거시적 관점 등이 매우 중요한 연구 영역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우수한 두뇌와 잘 훈련된 과학자가 있고 정보기술(IT)분야에서 세계의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국내의 경우 이 분야에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21세기 생명공학에서는 세계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인간 유전체 지도의 완성으로 수많은 유전자.단백질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들을 작용점으로 하는 신기능 약물 개발의 황금기를 예고하고 있다. 단지 지금까지처럼 단편적인 시각보다는 복잡하지만 엄격한 규칙이 있는 생명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생명공학은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한 투기성 산업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김성훈 서울대 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