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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읽기] 싸이에게 권하는 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성교육의 시작은 자기 몸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남이 요구한다고 해서 자선 베풀 듯 선뜻 '개방' 혹은 '보시' 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대도 마찬가지다. 바로바로 욕구를 해결하는 게 인간다운 처신은 아니다. '유쾌한 교제' 가 끝난 후에 닥쳐올 긴 시간의 울적함을 또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올해 초 모처럼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에서 개성적인 인물 하나를 발견하고 눈길이 갔다. 예명조차 개성적인 싸이가 바로 그였다.

얼굴이나 몸매는 이 시대의 규격화된 미의 기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요즘 젊은이의 사랑 풍속을 비틀면서도 그 말하기 방식이 재미있었다.

더구나 그는 립싱크를 거부했다. '판 틀려거든 입이나 제대로 맞춰라' 고 어느 무대에선가 일갈했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 도전(도발?)이 마치 권력에 일제히 립싱크하는 통속의 무리들을 야유한 듯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싸이가 TV쇼 화면에 빈번하다 싶더니 드디어 시트콤(SBS '하니 하니' )에까지 등장했다. 음악프로는 물론이고 온갖 토크쇼, 버라이어티 프로를 '도배' 하더니 드디어 연기자의 세계로까지 '진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도 등장하는)한 것이다. 싸이의 상품성을 간파한 제작진의 미각.후각, 그리고 행보는 남달랐다.

처음엔 상품으로 시장에 내걸렸어도 종국엔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게 본인의 바람일 것이다. 화면 속의 종횡무진에 대해 싸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원하는 시선을 거부할 수 없어서' 라고 말했다. 아니다. 거부해야 한다.

이땅의 오락풍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구어졌을 때 다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 수많은 반짝스타들이 지금 어느 은하수 끝자락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 눈여겨 볼 일이다.

히트작 '새' 에서 그는 "남의 시선 남의 이목 남의 크고 작은 목소리 되게 신경 쓰는 당신" 에게 경고한 바 있다. 그 목소리가 나를 단지 이용해 쾌락의 도구로 소모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귀한 존재로 남게 하려는 것인지 가늠해야 한다.

"나 갖다가 너는 밤낮 장난하나" 라는 부분도 나오는데 바로 지금 그가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장난치다가 제자리에만 갖다 놓으면 좋은데 방송의 생리상 그런 의리는 없다. 한번 뱉은 껌은 다시 씹지 않는다.

오랜만에 나타난 개성적 엔터테이너가 "한순간에 새 됐어" 라며 주저앉지 않길 바라는 심정이다. 제작진이 아무리 간청해도, 시청자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그 유혹의 시선을 외면해야 할 이유가 있다. 지금이 그 때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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