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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 앞으로 10년이 마지막 기회] 2. 개방 파고, 일본도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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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니가타(新潟)현 우오누마(魚沼)에서 생산되는 '고시히카리' 쌀은 가격이 일반 쌀의 두배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그런데 정작 우오누마에 가면 노는 논이 많다. 아예 모를 내지 않은 논도 있고 모내기를 반만 한 논도 있다.

니가타 농협 사토 미쓰오(佐藤光夫)영농기획과장은 "이 지역 전체 논의 23%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며 "쌀이 남아돌기 때문에 생산량을 조절하지 않으면 가격이 떨어져 장기적으로 농민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일본 전역에서 생산 조절을 위해 휴경하는 논은 올해 106만ha로 전체의 30%가 넘는다. 휴경하는 논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 우리나라도 2002년 생산조정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했지만 실시 지역은 전체 논의 3%에 불과하다. 또 대부분이 산간지역에 있어 생산 조정 효과가 별로 없다.

1995년 우리나라와 함께 쌀 시장 완전개방(관세화)을 미루고 수입 물량을 제한했던 일본은 99년 외국 쌀에 ㎏당 341엔의 관세를 매기기로 하고 물량 제한을 폐지했다.

그런데 수입량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생산조정제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국 쌀의 품질과 가격을 유지하도록 꾸준히 준비한 게 관세화의 영향을 줄인 비결이다. 반면 대만은 충분한 대비 없이 시장을 개방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다. 개방 후 미국과 일본 쌀이 대만 가정 식탁을 점령했다.

가격 안정과 재고 관리를 위해 매년 벼 재배면적을 3만여ha(약 9000만평) 이상 줄여야 하는 부담도 떠안았다. 퇴출당한 농민들의 재취업 문제와 수입쌀을 원조용으로 쓸 수 없는 것도 대만 정부의 골칫거리다.

◆ 치밀한 계산=90년대 후반 일본은 한 해 쌀 생산량의 40%에 이르는 재고 쌀로 골치를 앓았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 수입해야 하는 물량(최소 의무 수입물량.MMA)은 계속 늘고 있었다.

99년 당시 일본도 쌀의 관세화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관세화를 결정하면 86~88년 일본 내 소비량의 7.2% 수준인 MMA를 더 늘리지 않아도 되지만 관세화 유예를 지속하면 2004년까지 이를 8%까지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신 시장을 열면 외국 쌀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올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일본 전국농협중앙회의 고바야시 히로후미(小林寬史) 세계무역기구.자유무역협정 대책실장은 "쌀 시장 완전개방을 결정하기 1년여 전부터 분석과 토론을 했다"며 "분석 결과 재고를 줄이기 위해 MMA를 더 늘려선 안 되며 시장을 모두 열 경우에도 관세율과 품질을 감안하면 쌀 수입이 급격하게 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은 중국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경쟁을 하느라 충분한 검토 없이 시장을 개방했다. 대만은 2000년 WTO 가입 뒤 1년간 MMA만을 수입했지만 쌀 가격이 급락, 생산비 아래로 떨어졌다. MMA로 들어온 수입 쌀만으로도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대만은 시장보호 효과가 없는 물량 규제를 더 이상 고수하지 않고 1년 만에 쌀 시장을 완전개방했다.

◆ 고품질로 승부="우오누마 고시히카리가 세계 제1의 쌀이기 때문에 외국 쌀이 들어와도 걱정 없다."

벼와 버섯을 재배해 연간 2000만엔의 순수익을 올리는 미야우치 미사토(宮內正敏.52)는 자신감이 넘쳤다. 우오누마 쌀이 최고급 쌀이 된 데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병충해가 적고, 밤낮의 기온차가 커 쌀알이 잘 여무는 자연조건의 영향이 크지만 쌀의 품질을 유지한 것은 지역농협과 농민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 지역 농협은 매년 품질 평가를 해 품질이 좋으면 60㎏에 500엔씩을 더 주고 구입한다. 가공과 판매도 농협이 맡는다. 니가타현의 고시지(越路)에서는 농가와 농협의 공동 부담으로 인공위성 사진을 찍은 뒤 단백질 함량을 판독해 논별로 수확 시기를 결정한다.

농협의 사토 과장은 "입맛은 세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1등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품종 개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농업도 약점이 있다. 인건비가 비싸고 전반적으로 소농 위주의 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오누마에선 올해부터 전체 논의 3%에서 모내기를 하지 않고 씨앗을 논에 직접 뿌리는 농법을 쓰고 있다. 모내기철에 벼 농사에 투입되는 전체 노동력의 25%가 집중되기 때문에 아예 모내기를 없애 인건비를 줄이고 가격을 낮춘다는 계산이다.

◆ 앞서가는 인프라=도쿄(東京)에서 서북쪽으로 40㎞ 떨어진 지바(千葉)시의 펄 라이스 동일본 정미공장. 쌀 포장지에 새겨진 'Agahaagd'라는 암호 같은 알파벳을 컴퓨터에 입력하자 화면에 '6월 7일 오전 7시27분부터 8시20분 사이에 가공.포장된 71개 중 첫번째 것'이라는 설명이 떴다. 생산 농가, 저장 기간과 창고 등도 바로 알 수 있다. 안전성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원인을 찾아 고치고 소비자들에겐 믿음을 주는 시스템이다.

이곳의 하루 정미 능력은 120t으로 우리 정미공장의 4~5배다.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일본은 2002년 대만.미국.중국 등에 쌀 538t을 수출했다. 일본은 앞으로 3년간 중국 상하이.싱가포르.대만 등에 5만t을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시장을 완전히 개방한 뒤 쌀 수입국 일본이 쌀 수출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도쿄.니가타.지바(일본)=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홍병기(팀장), 김종윤.김영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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