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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조선 국보’ 일본 왕실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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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 왕실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온 조선왕조 희귀본 고문서의 존재를 확인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궤(儀軌)·제실도서(帝室圖書)·경연(經筵)을 촬영했다. 제실도서에는 상단부에 규장각과 대한제국 제실도서관에 있었던 도서임을 뜻하는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란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일 궁내청 도서에서 ‘제실도서’의 직인이 확인돼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김현기 특파원]

일제에 강탈돼 일본 왕실(일본에선 황실)에 보관돼 온 조선 왕실의 국보급 희귀 문서들을 국내 최초로 직접 확인하고 사진까지 확보했다.

본지는 약 두 달에 걸쳐 일본 왕실 도서관인 궁내청 서릉(書陵)부에 소장된 조선 왕조 의궤(儀軌), 제실도서(帝室圖書), 경연(經筵) 등 조선 왕실 도서들을 열람하고 관련 사진을 입수했다. 지금까지 일본 왕실에 있을 것으로 추정만 해 온 희귀 문서 진본들이다. 대부분 식민지 시절 조선총독부가 일본 왕실로 무단반출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기록도 확인했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정수다. 제실도서는 조선의 의학과 관습, 군의 역사 등을 기록한 고문서. 경연은 임금을 위한 교양강좌용 서적이다.

확인된 문서 가운데 특히 귀중한 것은 경연에 사용된 책 『통전(通典)』이다. 『통전』은 고려 왕실에서 사용하던 책으로 조선 왕실에까지 이어져 임금 교양용으로 활용됐던 책으로 확인됐다. 책의 끝 부분에 찍힌 붉은 직인 ‘고려국십사엽신사세장서(高麗國十四葉辛巳歲藏書)’가 선명하다.

제실도서 38종도 확인했다. 제실도서에는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란 주인(朱印·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모두 규장각과 대한제국 제실도서관에 있던 책이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 왕실 도서관으로 건너갔음이 입증됐다.

이번에 확인된 문서 가운데 명성황후의 국장 모습을 묘사한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의 경우 표지와 그림 한 점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이번에 촬영한 의궤 내부 행렬 그림 두 점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명성황후의 국장 모습이 그려진 의궤. 총을 메고 칼을 찬 병사들이 호위하는 상여와 가마 행렬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명성황후의 국장 모습을 기록한 이 『국장도감의궤』는 오대산 사고(史庫)에 소장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현기 특파원]

이번에 확인된 고문서들은 대부분 우리 정부가 요구해 온 반환 대상에 해당된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 혜문 스님은 “그동안 목록으로만 확인됐던 일본 궁내청 소장 사료들이 대거 공개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특히 국내에 없는 『통전』을 발굴하고, ‘고려국’이란 직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올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소장된 한국 자료의 반환을 요구해 왔다. 지난달 26일에는 이정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선왕실의궤 반환 촉구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체결된 협정으로 문화재 인도 문제는 일단락됐다”며 반환에 부정적이다.

18년간 문화재 반환운동에 관여해 온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민족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불법 유출된 문화재의 반환을 이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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