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교과서 수정 요구 이후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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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8일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 35개 항목의 재수정을 요구한 것은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희박해 향후 한.일 간에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 줄다리기 협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약속을 지켜라" =재수정 요구에 담겨 있는 우리 정부의 주된 메시지는 '일본은 국가적.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서 벗어나라' 는 점이다.

올바른 한.일 관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뜻이 깔려 있다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1998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체결한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 를 표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총리의 담화와 배치된다고 지적한 것은 '국가 차원의 약속을 지키라' 는 촉구다.

교육과 관련된 유네스코 선언 등 교과서가 지켜야 할 국제사회의 지침을 위반했다고 지적한 것은 '국제감각 상실' 이라는 점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이 한국사를 깎아내리고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피한다면 한.일 관계의 미래를 거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처럼 강력한 요구는 하되 일본의 역사 교육에 간섭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도 밝혔다.

이는 일본 내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정 간섭' 주장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 압박 수단은 무엇인가=정부는 일단 일본측의 반응을 지켜보다 성의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단계적으로 대응책을 구사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6월로 예정된 한.일 공동해양수색 및 구조훈련을 연기한 것이 첫째 조치다.

정부는 앞으로 합참의장의 일본 방문 등 고위급 군 인사 교류 연기를 비롯해 ▶국제기구에 재수정 요구안 배포▶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지도국' 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주지시킨다는 전술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일본 내의 문제 교과서 불채택 운동 지원과 한국 역사 바로 알리기 사업을 담당할 상시기구 설치도 고려 중이다.

우리가 재수정 요구안을 전달함으로써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결국 한.일 간의 물밑 외교 교섭의 향방과 일본 정부의 단기적 대응은 오는 23~25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 외무장관 회담 중 개최될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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