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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금세탁 방지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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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자금세탁방지법' 에 대한 논란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법안은 원래 2단계 외환자유화 조치의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은 부패방지를 위해 '정치자금' 도 이 법의 통제를 받도록 한 부분이다. 야당은 정면으로 이 내용에 반대하고 있고, 여당은 소극적인 자세로 통과시키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 정치자금 통제싸고 논란

자금세탁방지법은 대부분의 국민이 부패척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법안으로,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것은 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특히 여당보다 도덕성에 의지해야 하는 정도가 큰 야당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도덕성의 이미지에 대한 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면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권분립이 잘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을 만드는 기관,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간에 형성되는 '견제와 균형' 에 의해 법 해석과 집행의 자의성이 통제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결국 힘을 가진 집단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된다. 이러한 힘의 특권을 여당시절 흠뻑 누려봤던 한나라당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여당의 지위를 누려왔던 한나라당이 이러한 독선적 법 집행의 원조라고 하면, 여당인 민주당은 이런 관례의 훌륭한 전수자로서 전혀 흠잡을 데가 없다. 동일한 제도인 '신문고시' 에 대한 관점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조삼모사로 바뀌는 것을 볼 때 민주당이 얼마나 과거의 독선적 법 집행의 관례를 훌륭히 답습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자금세탁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시민단체의 순수한 의지와는 달리 야당 자금의 통제수단으로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당 입장에서도 완전히 적극적이지 못한 것은 현재 국민의 지지도로 봐서 다음 대선에 다시 여당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만일 대선에 패배한다면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안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정부패방지를 위한 대안은 전혀 없는 것인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 이다. 행정과 사법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선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는 것' 부터 우선돼야 한다.

대부분 국가의 정당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여당의 부정부패와 독선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는 행정수반의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인사권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여당인 민주당도 야당 시절에는 대통령의 인사권 통제를 강력히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대선에 승리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민주당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강력한 수호자로 변신했다.

우리나라에선 정권이 바뀌면 차관급 이상의 보직에 있는 사람들은 일단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다. 괜히 형식적인 법으로만 보장돼 있는 신분 보장을 내세웠다가는 더욱 큰 보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임기' 라는 것은 임기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충성하라는 의미일 뿐, 대통령이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정상적인 법 해석으로는 아직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 행정.사법부 독립이 관건

이런 상황에서 목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부의 기관장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한국의 정치상황 아래에서 금융정보분석원.검찰과 같이 대통령의 입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기관들에 의해 돈세탁방지법과 같은 부패방지 법안이 추진된다는 것은 야당에는 목에 올가미를 걸겠다는 제도에 지나지 않게 되고, 여당으로서도 목 안의 가시로 남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부패방지 관련 법안들을 제안하고 통과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시민단체는 우선적으로 행정부와 사법부를 대통령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독립하게 되면 그들 자체가 독선적인 기관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입법부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경계하고 견제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 이라는 자연스러운 삼각관계며 민주주의의 성숙을 의미한다.

조성한 <중앙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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