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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광받는 특성화고 ⑩] 부산 영상고등학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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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고 방송부 학생들이 인터넷 음악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방송반에서= "준비됐나?", "준비됐다."

경상도 억양이 울린다. 부산영상고등학교 방송 스튜디오에서 방송부원들이 인터넷 음악방송중이다.

"인문계는 미래가 안 보여서요. 석.박사도 놀고 먹는 판인데요 뭐."

중학교 때 반에서 6등정도 했다는 방송부 김용현(16)군. 부산 영상고 진학을 위해 수원서 내려왔다.

"중학교 때 친구들 만나면요? '미쳤다'고 그러죠. ' 내 좋아서 그러는데 니들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해 주죠."

3년제 동아방송대에 진학 후 방송국 PD나 컴퓨터 그래픽 담당자로 일하는 게 꿈이란다. 4년 시간이 아까울 뿐더러 이 학교가 취업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상고에서는 제대로 지원되는 시설 덕에 다양한 실기를 배울 수 있어 졸업할 때까지 과목당 두 작품 정도씩 제작해보게 된다.

◇부산 영상고등학교= 부산시 영도구 신선동.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곳이다. 좁은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새로 지은 7층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왜?'라고만 적혀 있는 표지판이 있다. 'ㄱ'자 건물에 체육관 겸 강당이 있고 운동장 대신 뜰이 있다. 1955년 개교한 부산 남여상을 2001년 특성화고인 영상 고등학교로 개편, 건물도 신축해 첨단 기자재들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4종 98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암실, 방송 스튜디오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부산시는 10대 주요 산업에 영화를 포함시켰다. 영상고도 시교육청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 시교육청은 건물에만 110억원, 장비에 40억원을 투자했다.

"서울에 이런 학교가 있었으면 대단했을텐데. 지역적 한계가 분명히 있긴 하다. 그나마도 부산서도 지하철이 안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어 다니기 불편해한다"라고 배현기 교장은 아쉬워한다.

"인근 대학들보다 설비가 잘 갖춰져 있어 대학생들이 실습실을 빌려 쓰고 있을 정도"라고 박광수(54) 교무부장이 전했다.

국내 유일의 영상 고등학교다 보니 청소년 대상의 국내 50여개 영상제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이혜경 시네탑 대표가 산학겸임교사로 학생들의 실습을 지도하고 있다.

영상제작과, 영상디자인과, 인터넷방송과, 만화캐릭터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생은 720여명. 여학생이 3분의 2다. 개교 당시에는 2:1이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요즘은 그리 높지는 않다. "특성화고를 실업계고로 보기 때문입니다. 실업계고등학교에 대한 학부형들의 편견이 아직 남아있거든요" 박 교무부장의 설명이다. 1회 졸업생들의 95%가 진학했다. 박광수 교무부장은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고졸 취업이 꼭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5%의 취업자를 제외한 졸업생들은 절반은 4년제, 절반은 2년제 대학으로 진학했다. 취업률이 낮은 것에 대해 윤 교감은 "특성화고이긴 하지만 기술 위주의 학교와는 분명 다르다. 대학의 학문적 부분도 겸비할 필요가 있는 분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내신은 8~70%까지 다양하다. 평균은 54%. 썩 공부를 잘했다고 볼 수는 없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영화에의 꿈을 키우고 있다.

"사실 이 아이들이 공부로 승부를 낼 학생들은 아닙니다. 일찌감치 이런데 취미를 가지고 소질을 계발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죠"

윤계덕 교감은 동서대 영상매체 매스컴 학부 수시모집에 15명이 합격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인문계고 내신 10% 이내의 학생들이 오는 곳이라고. "중학교 때는 학교의 중심이 될 수 없던 성적 낮은 학생이 소질을 계발해 관련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의 보람 중 하나"라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적 기반은 잘 갖춰져 있지만 교사 등 소프트웨어는 아직 시작단계다. 특성화학교를 특색있게 운영하려면 사회 전반적 인식의 대전환이 전제돼야." 배 교장이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영상 쪽은 교사 자격증이 없어 기존의 교사들이 별도로 연수를 받은 뒤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황인환 교사가 그 예다. 대학 기술교육과를 나와 영상쪽 경험은 없다. 기술과 교사로 7년 근무하다가 영상고로 개편되면서 3년전부터 방송을 담당하고 있다. 산학겸임교사의 수업을 청강하면서 배우고, 대학.방송국.프로덕션.장비판매업체 등 공부가 되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배우러 다녔다. 덕분에 개편 첫해에는 밤 10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었다고.

이외에 컴퓨터그래픽과 교수, 프로덕션 근무자 등 교수나 현장 관계자 등을 산학겸임교사로 위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연극영화과 학생들에게 교사자격증이 나와 이곳에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어 그나마 형편이 나아졌다.

"우리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꿈과 창의력을 북돋워 주는 겁니다. 얼마 안 있어 우리 학교 출신 영화감독도 나올 겁니다" 박 교무부장이 자신있게 말한다.

산학겸임교사 이혜경(40.여) 선생도 거들었다. 이 선생은 CF 제작사 시네탑 대표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계발한 창의력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 속에서 개인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도 이 많은 이미지들을 어떻게 인식할건지, 생활 속의 단상들을 어떻게 접근하고 정리할건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선생은 "대학강의도 해봤지만 대학생보다 취업 등에 대한 이해타산이 적고 진지해 가르치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수업료는 공립고등학교와 같다. 장비와 소모품은 학교에서 제공하고, 전교생의 절반은 학비를 면제받고 있다. 영상고는 올해부터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부산=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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