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자존외교의 색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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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정찰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워싱턴 포스트지엔 "우리의 친구란 자들은 어디에 있나" 고 묻는 칼럼이 실렸다.

미.중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자 이 지역의 우방이란 국가들은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미국도 방패막이 역할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 한.미.일 3각동맹 재편중

이런 물음은 우리에게도 던질 때가 된 것 같다. 동북아에서 공산주의 봉쇄 명분 아래 맺어졌던 미-일-한 보수동맹은 여전히 유효한가, 부시 독트린이 미사일방어(MD)체제를 강요하고 일본은 우경화 경향을 보이는 지금 이 동맹체제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또 그 보상은 무엇인가를 한번 반추해볼 때가 됐다는 말이다.

사실 이 3각동맹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金大中)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취하고서부터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러시아의 동의와 중국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내는 친북방정책을 펼쳤다. 미국 민주당 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협력자' 로 인정하던 시절엔 아무 문제도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로 간주하고 '테러국' 북한을 MD체제로 압박하자 김대중 외교의 딜레마가 표면으로 떠오르게 됐다. 김대중 외교의 노선이 부시 독트린의 조명 속에 과거의 보수 자유주의적 노선과는 다른 색깔임을 드러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지금까지 관성처럼 전승돼온 한국 외교의 방향에 재검토를 요구하는 근본적인 숙제를 던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기로는 말도 되지 않는 미국의 MD체제를 혈맹(血盟)이기 때문에 수용해야 할 것인가, 역사교과서 검정이란 이름 아래 조선반도에 대한 '침략' 을 '진출' 이라고 주장하는 사관(史觀)을 허용하는 일본 우파정부를 3각동맹의 한 파트너로 인정해야 하는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감성적 민족주의자들이나 좌파는 대뜸 반미(反美)자주외교를 외치고 일본 군국주의를 소리 높여 규탄한다.

그러나 최근의 통상압력이나 월가의 금융동향에 숨넘어가는 우리 경제의 현실을 본다면 우리가 과연 반미감정을 부추기며 자존외교를 주장할 위치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친미론자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들어가는 것이 훨씬 실리적이다. 그러면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은 버려야 하는가. 한반도화해정책과 미.일과의 동맹관계는 같은 축 위에서 양립할 수는 없는 것인가.

앞으로의 우리 외교전략은 이런 갈등요소들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평화정책 추진을 위해 MD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NO" 라고 말할 만큼의 자주성은 확보해야 한다. 미-일-대만의 대(對)중국 봉쇄연대에 가담할 수 없다면 역내(域內)중립을 천명할 외교력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젠 미국 동아시아정책의 한 종속변수에서 벗어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런 바탕에서 주한미군의 위상이나 한.미 방위조약의 시한설정과 같은 과제가 한.미간 외교 의제에 반영되기 시작해야 한다.

일본과의 현안들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일본을 언제까지나 과거사의 사죄대상으로 윽박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나이브하다. 일본은 이미 신가이드라인 채택 이후 동남아시아 해상통로 1천마일에 대한 방어책임을 미국으로부터 떠맡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군대를 보유할 것이며 평화헌법을 수정할 것이다.

*** 대북문제 일본참여폭 제한을

역사교과서문제로 인해 확인한 것은 일본 국민은 이미 우경화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소수 좌파나 교원노조와 연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경화된 일본 국민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긴장된 협력' 이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과의 경제교류는 모르지만 정치안보 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해선 안된다. 그들의 팽창주의적 경향을 주시하는, '긴장되고 정중한 협력관계' 에 머물러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 국방장관회담을 군사연락관회담으로 낮추고 대북문제에 관한 일본의 참여폭을 제한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보수 자유주의적 3각동맹은 이제 심각한 재편 와중에 있다. 그렇다고 중국-러시아-북한의 북3각으로 다가가는 좌파적 이념성은 더더구나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일본이 얼마만큼 우경화하든 상관없이 우리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우리 외교의 방향타를 설정해가기 시작해야 할 때다.

김영배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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