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허물어지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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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우리는 정치에 매몰돼 사회가 어떻게 함몰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적 내파현상(內破現象)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일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이 현상은 해가 다르게 증가해 사회 속에 살면서 '사회적 통제' 에서 벗어나 있고, 국가 속에 살면서 국가로부터 '방치된 사람' 수가 전국민의 15%에 이르고 있다. 이 수도 정부기관이 발표하는 공식숫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수치는 20%대에 이를지도 모른다.

***국민 15%가 '방치된 사람'

실직자가 1백만명이 넘고 신용불량자가 3백만명이 넘는다는 것은 너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에 주민등록이 말소돼 버린 사람(무주민등록자), 가출해 부랑자로 떠도는 사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 이런 사회적 유기자(遺棄者)만도 70만명에 이른다. 무보험차량으로 운전하는 사람, 의료보험을 한푼도 내지 않는 사람도 2백만명이나 된다. 국민연금을 아예 내지 않는 연금비불입자 수십만명을 제외하고도 7백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통제망' '안전망' 밖에 살고 있다.

범죄는 또 얼마나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가.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폭력.절도)가 52만건을 상회하고 증가율도 1999년 대비 36%나 돼서, 범죄발생건수와 범죄증가율 모두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생계형 범죄의 대표격인 절도가 전체 범죄건수의 3분의 1에 육박하고, 더구나 그 증가율은 99년 대비 두배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사회가 사회인 것은 적절한 '사회적 통제' 가 가해지고 그에 따라 '사회적 안전망' 이 강구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가인 것은 그 '안전망' 을 두텁게 보호하고 질높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구멍뚫린 오존층처럼 여과 안된 자외선이 마구 엄습해 들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도 국가도 손을 놓고 있다면 이는 완연히 60년대의 후진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방치되고 있는 그 많은 기아자들이나 남한에서 방관되고 있는 그 많은 유기자들이나,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있다' 는 점에서는 지금 남북한이 공히 다를 바가 없다.

더 경악할 일은 청소년 흡연인구의 격증이다. 특히 중.고생 흡연자수가 50만명에 달하고, 소비한 담배량도 한 해 6백만~7백만갑이 된다고 한 국가연구기관(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했다. 전 남고생의 27.4%, 전 여고생의 10.7%, 전 남중생의 7.4%, 전 여중생의 3.2%가 담배를 태우고, 더 경악할 일은 이 흡연비율이 세계 최고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은 다른가. 교육자는 교육자 대로 교육을 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고, 기업가는 기업가 대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개탄하고, 언론은 언론 대로 활동이 위축된다고 절규하고 있다. 애도 어른도 의지가 무너지고 의욕을 상실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사회적 내파현상' 이다.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는 생활세계의 안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위협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안에서 모든 문제가 벌어지고 그 문제 때문에 일상으로 살아가는 생활세계가 말할 수 없이 위협을 받고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섣부른 개혁이 위기 불러

왜 그러한가. 이유는 오직 하나, '섣부른 개혁' 때문이다. 개혁만큼 철저한 준비, 철저한 계획, 철저한 비전을 요구하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 정부의 개혁은 아무런 준비, 아무런 계획, 아무런 비전 없이 오직 구호만 가지고 부르짖어졌다.

그런 개혁의 과정은 언제나 자명해서 획일적 평등주의로 기업을 개혁하려 했고, 하향식 평준화 강행으로 교육을 개혁하려 했고, 관치적 무차별주의로 시장을 개혁하려 했다. 허울만의 자율주의로 언론을 개혁하려 했고, 제왕적 권력주의 혹은 수에 의한 힘의 우월주의로 정치를 개혁하고 의회를 개혁하려 했다.

마침내 행위기준인 가치의 중심이 무너지고, 지향의 표지인 이데올로기는 정통성을 잃었다. 그리고 공권력은 권위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아무리 사회적 유기자가 많이 나와도 그 어떤 시도로도 '사회안전망' 구축이 어렵게 됐다. 그러나 현정권은 그 적나라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송복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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