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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해평습지에 진객 흑두루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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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지난달 해평습지를 찾은 흑두루미 가족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조문규 기자

지난 28일 오후 4시 경북 구미시 해평면 문량리 제방.

경북대 박희천(56·생물학) 교수팀과 조수보호감시원 김일두(58)씨가 망원경으로 낙동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마다 이곳에서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를 관찰해 온 박 교수는 “오늘은 새들이 안 올 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에서 남하하는 흑두루미들은 오전에 북한 청천강을 떠나 700여㎞를 비행한 뒤 대략 오후 3시쯤 중간 기착지인 해평습지에 내려앉는다는 것. 예상 시간이 지난 데다 이날 아침 흑두루미 2200여마리가 해평습지서 일본 이즈미로 떠나 선발대는 다 왔을 것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평습지엔 떠나지 않은 일부 흑두루미들이 남아 있었다. 박 교수는 망원경으로 수를 헤아리더니 "정확히 82마리"라고 말했다. 망원경 렌즈엔 모래톱 위에 머리는 하얗고 몸은 검은 흑두루미의 자태가 선명히 보였다. 지친 날개를 접은 채 모래 속에서 오순도순 먹이를 찾고 있었다. 몇마리는 경계 때문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뚜르룩 뚜르르…." 그때 처음 듣는 낯선 소리가 들렸다. 박 교수는 "흑두루미 소리"라며 "두루미란 이름은 이 소리에서 딴 것"이라고 설명했다.

흑두루미는 머리를 들면 키가 1m가 훨씬 넘는 대형이다. 또 1년에 알을 두개 정도만 낳아 세계적으로 1만3000여마리만 남은 희귀조류로 분류된다. 주변에는 이곳에서 4년째 월동한 쇠기러기떼도 보였다. 흑두루미가 모두 떠나면 11월쯤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

해평습지는 1995년 이후 흑두루미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2000년부터 도래지로 회복됐다. 이곳을 찾는 흑두루미는 해마다 4000~7000여마리. 낙동강은 이곳에 이르러 작은 삼각주를 만들고 흑두루미의 먹이인 볍씨며 벌레 등이 넉넉한 편이다.

구미시는 지난 9월 동북아시아 두루미보호 국제 네트워크에 가입했지만 해평습지로 고압선이 지나고 모래 등 골재 채취가 이뤄져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방에는 흑두루미를 보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오후 5시 반. 일몰 무렵 북서쪽 하늘에서 갑자기 기러기떼가 몰려 왔다. 수천마리는 족히 돼 보이는 기러기의 이동은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박 교수의 예상대로 이날 흑두루미는 더 오지 않았다. 박 교수는 해평면장에게 "내일은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주자"고 제안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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