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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양심적 병역거부 해법없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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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동안 한국적 특수상황이란 이유 때문에 물 밑 깊숙이 침잠돼 있던 중요한 이슈가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거의 모두가 특정 종교 신자인 그들은 성경적 양심에 근거해 집총 거부 또는 입영 거부를 함으로써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징역살이를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군 교도소와 민간 교도소에서 약 1천6백명이 복역하고 있고 매년 교도소로 향하는 약 6백명의 발걸음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현재 1만여명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서도 이 나라에 양심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일전에 미국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다. 그가 사석에서 미국인들과 대화하던 중 한국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하자 미국인들은 깜짝 놀라면서 "한국이 상당히 민주화한 나라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예전의 얘기가 아니냐" 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의외의 반응에 부끄러워 얼른 화제를 돌렸다고 한다.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만하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 중에서도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는 절대적 자유에 가까운 근본적 자유이기 때문이다.

두가지가 결합된 종교적 양심의 자유는 그 이상이다. 천부적 인권이라고도 하며 법에 우선하는, 법 이전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또 하나의 중대한 가치인 국가안보와 충돌을 빚을 때 양심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제한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두개의 큰 가치가 조화롭게 존중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민주국가의 도리다. 즉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면서 국방과 평등주의에도 흠집을 주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대체복무제도다.

진실한 양심에 터잡은 병역 거부자에게 병역을 부과하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어쩌면 더 힘들지도 모를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양립하기 어려워보이는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가 악수할 수 있는 절묘한 조화의 길이다.

이미 징병제하인 나라 중 30여 개국이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남북 대치상황과 병역의무에 대한 국민의 정서를 감안하면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때 얻는 게 더 많다. 당사자가 징역살이와 전과자의 멍에를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력의 낭비를 줄이고 고급인력을 사회복지기관 등에서 활용할 수 있다.

또 교정시설의 부족을 완화할 수도 있다. 민주제도의 우월성을 전시할 수 있는데다 양심적 사회기풍을 진작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방의 구멍을 우려하는 견해가 있으나 매년 6백명 정도의 숫자는 해마다 징집되는 숫자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재래식 전투에서 과학전화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또 가장 우려하는 바가 사이비 양심을 어떻게 가려내느냐 하는 것인데 철저한 판정절차를 거친다면 염려할 바가 못된다.

더구나 그 기간과 힘든 역무를 고려할 때 단지 병역을 피하기 위해 양심을 가장해 대체복무를 택하는 사람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이 제도를 시행 중인 나라들이 엄밀한 판정절차를 마련해 놓고 있으며 시행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국민개병주의나 평등주의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으나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병역특혜를 얻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전쟁을 연습하지 않기 위해 군복무 대신 힘든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것뿐이므로 실질적인 면에서 평등주의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종교가 병역 거부자 처벌 때문에 사실상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점이 평등주의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국가는 더 이상 처벌기계가 아니다. 제빵기계에서 똑같은 빵이 구워져 나오듯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천편일률적으로 징역 3년을 복역하기 위해 양산되는 일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 이지만 이제 활발하게 논의돼야 할 문제다.

吳 鍾 權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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