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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이영일] 중국 지식인들이 말하는 북한관을 살펴보면서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한중간은 물론 미국 일본 등지에서 열리는 주요 학술회의에 중국학자들이 주제발표자로 또는 토론 참가자로 대거 초청받고 있다. 중국의 저명 학자들을 초청하려면 종래와는 달리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에 예약해야할 만큼 중국학자들의 견해를 구하는 모임이 부쩍 늘고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수준이 총량 면에서 세계2위 내지 3위권에 진입했고 미국의 달러화 보유량도 세계 1위를 점할 만큼 향상된 결과이다. 이제 중국을 G2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의례적인 형용사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실질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한반도 내지 동북아 전략문제 전문가들이 오늘의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하고 있는가는 우리의 중요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 중국전문가들은 중국학자들을 국제파와 전통파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성향에 맞추어 관련 학술회의에 초청하는 것 같다. 국제파들은 대부분이 미국 등 서구지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거나 외교부문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과거 냉전시기에는 북한과 중국은 혈맹관계였지만 한중간에 국교가 열리고 남북한이 다 같이 유엔에 가입한 현재는 혈맹관계의 북·중 관계는 끝났고 정상적인 국가대 국가 간의 관계라고 인식한다. 특히 한·중 양국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한중관계를 한 차원 더 높인 현 단계에서는 한중관계를 중북관계에 못지않게 중시한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2009년의 제2차 핵실험은 2006년의 제1차 핵실험과는 달리 북 핵을 바라보는 중국정부의 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북한의 제1차 핵실험 때만해도 북한의 핵실험은 대미협상에서 우위를 노린 외교행위의 일환으로 보면서 외교적 해결이 가능한 문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2차 핵 실험이 있은 후에는 북한의 의도가 핵보유국가로서의 지위획득에 목적을 둔 것으로 평가하고 6자회담 같은 외교방식으로 해결가능한 문제인가에 심각한 우려를 자아냈다고 분석한다.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하면서 핵 폐기에 동의할 것 같은 제스처는 취하지만 실제로는 핵 보유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북경대학의 다른 학자는 북한의 핵개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고 김정일 정권(Kim's Household)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주저 없이 평가한다. 그간 미국은 북한이 핵 포기협상에 응하도록 하기 위해 북한을 침공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다짐하는 서면약속(2009년 부시정부)을 해주었고 북한에 에너지로서 중유를 제공했다.(클린턴과 부시) 이러한 미국이 북한을 압살하는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우기면서 이를 핵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수용하지 않는다.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토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견제하고 응징하는 안보리의 제재결의에 두 번이나 찬표를 던진 것은 북한에 대한 중국 측의 우려와 유감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파들은 국제파와 입장이 다르다. 이들은 중국과 조선(북)의 우호관계는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한 기초이며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평화와 발전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면서 오늘의 북 핵 사태는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당시에 미국이 중국에 보인 태도를 상기해보라면서 그 당시 중국을 비하, 고립, 봉쇄시키는 미국의 정책이 오늘날 북한에도 되풀이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맞서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선 것은 정당한 자위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핵이 한 나라에 독점되었을 때는 전쟁수단이 되었지만 여러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핵무기는 더 이상 전쟁수단이 되지 않게 되었다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을 "악마화(惡魔化)"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북핵문제는 반세기를 넘기도록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북미대결구도의 산물이며 미국의 북 핵카드의 본질은 대중 포위 전략을 완결함과 동시에 나아가 동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지역 전체, 특별히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들에 대한 자신의 패권적 지배를 관철시키려는 것으로 분석한다. 중국의 한 언론인은 자립자강의 사회주의 북한의 존재는 중국변경안정의 보호벽이 된다고 지적하고 중조(中朝)맹우관계가 일단 파열하면 “자기편을 불리하게 하고 적을 기쁘게 하여(親痛仇快) 가장 크게 손해를 보는 것은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지식인 사회의 이 같은 두 가지 흐름은 중국정부의 대북한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고 어느 면에서는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유엔외교와 대서방정책에서는 국제파의 주장이 많이 채택되는데 반해 중국의 대내정책차원의 대북정책에서는 전통파의 입장을 살리는 측면이 엿보인다. 동시에 중국정부는 북 핵이 장기적으로는 중국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지만 당면해서는 북한의 붕괴나 와해가 중국안보에 더 절실한 부담과 위협이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정부의 이런 태도나 입장에 대해서는 전통파나 국제파의 시각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요즈음 이 두 학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북 핵 처리방도는 북한정권의 와해나 붕괴를 막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에 따르도록 하여 핵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쪽으로 집약된다. 최근 중국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항만, 도로, 철도건설에 투자를 대폭 늘리고 나진항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창지투(長吉圖-창춘-엔지-투먼)프로젝트는 그 의도가 북한의 개혁개방유도정책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음과 동시에 북한경제를 중국에 더 한층 깊숙이 예속시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양면성을 띄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화폐개혁의 실패로 김정일의 지지기반이 내부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시점에서 취하는 중국의 이러한 정책은 정책의도를 관철하기가 한층 더 용이할 것이다. 최근 경제적 궁지에 몰린 북한은 관광객의 신변안전보장을 요구하는 한국 측 주장을 일축하면서 금강산 관광 사업마저 중국에 넘기겠다고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북 핵문제나 북한의 개혁개방문제는 중국이나 미국에게 보다는 우리 한국의 장래에 더 크고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손을 놓고 앉아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대화를 지켜보면서 그 결과에 따라 한국의 대응전략을 세우려는 안이한 자세를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한국은 G20의장국이 될 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의 역량에 걸맞게 핵문제에 진전이 없다면 핵문제가 진전되도록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강구해야 하고 북한지역의 개혁개방을 위한 인센티브도 능동적으로 제공하는 협상주도력을 발휘해야한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햇볕정책처럼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지도 못하면서 선군정치나 핵개발을 뒷받침했던 과거의 전철을 밟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李榮一ㆍ韓中文化協會ㆍ總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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