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어처구니 없는 합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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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저 사람은 朴원사 전에 병역비리를 많이 한 걸로 아는데 멀쩡해요. "

1998년 5월 말 박노항(朴魯恒)원사가 잠적한 뒤 기자가 국방부 합동조사단을 취재차 방문했을 때 합조단 관계자가 검은색 점퍼 차림의 동료를 가리키며 넌지시 던진 말이다. 기자는 그때 병역비리가 간단치 않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지금 기자를 더욱 당혹하게 한 것은 그 병역비리의 '몸통' 을 끼리끼리 보호했다는 점이다. 합조단은 기무사.군검찰과 함께 군기강을 유지하는 군 헌병의 최고기관이다.

그런 합조단의 朴원사에 대한 비호는 최근 소환 수사를 받고 있는 현역 육군헌병 수사관인 尹모 준위의 진술로 다시 확인됐다. 朴원사를 체포해야 할 위치에 있던 尹준위는 朴원사가 도피한 뒤에도 그와 만나 술을 마시고 수사정보까지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같은 소속의 P준위도 마찬가지로 朴원사에게 수사정보를 전해준 사실이 98년 6월 발각돼 구속됐고, 그 때 수사요원의 20%가 교체되기도 했다. 병역비리에 대한 합조단의 연결고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朴원사의 '스승' 격인 B준위는 83~93년까지 10년간이나 수도통합병원의 병역비리를 감시하는 합조단 소속의 파견수사관으로 있으면서 병역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군 검찰은 보고 있다. B준위로부터 병역비리 수법 전수와 함께 이 자리를 인계받은 朴원사는 본격적으로 '병역비리 장사' 를 시작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朴원사와 B준위가 연속적으로 요직인 이 자리에 근무하도록 '방조' 한 당시 합조단 수뇌부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합조단에 근무했던 한 헌병 관계자는 "朴원사와 B준위가 그같은 요직에 여러해 있기까지는 합조단 지휘부의 배려가 있었을 것" 이라면서 "부끄러운 과거" 라고 착잡한 심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군 비리에 대한 비호는 합조단뿐인가.

朴원사가 통합병원에서 병역비리 장사를 할 때 의무사령부의 감찰부와 朴원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감시하던 국군기무사 요원은 어디에 있었는지. 동료라 해서 서로 비호하는 '가재는 게편' 식 행동은 이제 그만 하길 바란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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