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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열녀전'의 7가지 여성유형 분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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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통에 대한 비판과 해체를 통해 우리 방식의 자생적 페미니즘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중국어문학회(이화여대)와 한국여성연구원.여성신학연구소는 공동으로 12일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동아시아 여성의 유형, 그 이미지의 계보학' 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를 연다. 각 대학 중문과.철학과 교수와 김은실(이화여대).고갑희(한신대) 등 서구 페미니즘의 이론가들이 참여한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다룰 주 텍스트는 중국 한대(漢代)의 기록물인 『열녀전(烈女傳)』이다. BC 1세기 유향(劉向)이 쓴 이 책은 중국 최초의 여성전기집이자 여성교육서로서 고대 여성의 유형을 집약적으로 제시해 동아시아의 여성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학문적 분석과 재해석을 통해 우리 현실에 근접한 페미니즘의 이론과 방법을 찾자는 게 학술회의의 목표다.

유향은 『열녀전』에서 모범적인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을 모의(母儀).현명(賢明).인지(仁智).정순(貞順).절의(節義).변통(辯通).얼폐(孼嬖) 등 일곱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에 맞춰 1백4명의 행적을 기술했다.

중국어문학회는 이를 기초로 이미 3년전부터 치밀한 공부를 해왔으며 이번이 그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발표자들은 박영희(서강대 강사).김지선(고려대 강사).조숙자(서울대 강사)씨 등 학회의 소장 연구자들이다.

송정화(고려대 강사)씨는 『신화 속의 처녀에서 역사 속의 어머니로』에서 순종적 어머니상의 근원을 찾아나선다. 『모의전』을 집중 분석한 송씨는 한대에 유교가 지배원리로 대두하면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통해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은폐된 여성상' 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의 신화시대의 처녀신이었던 여와와 서왕모(西王母) 등 생명과 우주를 지배하던 주체적 여성상에서 크게 퇴보한 것이다. 이 때부터 아들의 교육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시장으로, 다시 학교 근처로 세번씩이나 이사를 다니는 열성으로 아들을 대유(大儒)로 키운 맹자(孟子) 어머니가 최고의 어머니상으로 등장한다.

김종미(아시아여성학센터 연구위원)씨는 '몸' 에 대한 유가(儒家)의 사유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의 정치적 함의를 분석한다.

『공간과 시선으로 읽는 고대 여성의 몸』에서 김씨는 오늘날까지 유교 담론의 핵심을 이룬 '심신일원론(心身一元論.마음과 몸은 하나라는 생각)' 은 몸과 마음을 구분해서 보는 서구의 사유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못박고, 그 허구성을 지적했다.

유교에서 몸은 예(禮)를 실현하는 장소인데, 그 예를 실천하는 '요조숙녀' 들은 닫힌 공간과 느린 이동, 금지된 시선을 특징으로 하여 군자들의 '부름(呼名)' 에 답하는 타자화(他者化)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남성의 성적(性的)대상으로서의 비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열녀전』이후 지금까지도 동아시아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다.

한편 김영미(이화여대 강사)씨의 『그녀는 추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왕비가 되었다』는 『열녀전』의 '현명한 추녀' 이야기를 통해 남성들에게 여성성이 어떻게 박탈됐는지를 분석했다. 남성들에 의해 선택된 '못생긴 여인' 들은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소유함으로써 화려한 왕비로 변신해 남성의 권력세계에 편입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박씨부인' (조선시대 국문 고대소설인 『박씨전』의 주인공으로 못생겼으나 학식과 재주가 많아 도술을 써 남편을 과거에 급제시키고 자신도 미인으로 환골탈태한다)도 그런 예 중의 하나다.

중국어문학회(회장 이종진)는 이미 1997년과 99년 각각 '동양학, 글쓰기와 정체성' 과 '동양학, 고증인가 방법인가' 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여는 등 주체적인 동양학 연구에 노력하고 있다. 02-3277-2151.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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