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연기 없이, 자국 없이 … 뜸은 진화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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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가 나빠 척추가 비뚤어진 척추측만증 환자가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이재동 교수에게 뜸치료를 받고 있다. 불을 붙여도 연기가 나지 않는 무연뜸으로 어깨(사진 왼쪽)부터 엉덩이로 갈수록 열자극이 더센 뜸을 놓았다. [최정동 기자]

젊은 층도 뜸의 효능 새롭게 인식

어르신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뜸이 젊은 층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이재동 교수(침구과장·대한침구학회장)는 “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20~30대도 요즘 새로 나온 뜸을 경험하고선 많이 놀란다”며 “생리통이 심한 여자친구에게 밸런타인데이에 뜸을 선물하는 남학생도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연인이 애정을 담아 주고 받아도 될 만큼 뜸의 외형이 귀엽고 깔끔하게 변한 것.

뜸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에는 뜸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많이 나 좁은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호흡기환자에겐 더 없이 불편했고, 벽이 더러워진다는 불평을 사기도 했다. 특히 피부에 닿은 연기가 검은 뜸진(뜸을 뜨고 난 뒤 부산물로 나오는 진액)을 남기기도 했다. 뜸이 타면서 나는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게 연기를 없앤 무연뜸과 아로마향을 더한 향기뜸이다.

뜸에 사용되는 재료도 쑥에 국한되지 않고 대나무 숯이나 전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뜸에 침의 효과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치료법도 있다. 봉독(벌침)을 놓은 자리에 뜸을 뜨는 봉독뜸과 침을 놓은 자리에 뜸을 올리는 온침이 그것. 온침은 침을 꽂은 위에다 뜸을 올려 불을 붙이기 때문에 피부에 뜸 자국이 전혀 남지 않는다. 시술의 편의성까지 고려한 제품도 나왔다. 뜸의 바닥 부분이 스티커로 처리돼 피부에 올리고 움직여도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한 뜸도 있다.

레이저 이용 온도 조절 가능한 뜸 나와

뜸은 연기와 냄새 말고도 온도조절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최근 이에 착안해 레이저를 이용한 온도조절 뜸치료기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기존 뜸의 온열자극과 달리 레이저 뜸은 광자극을 이용한다는 게 특징이다.

동국대 한의과대학 침구학교실 이승덕 교수는 “ 뜸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기존 뜸이 갖고 있는 열자극 효과를 동일하게 내는 뜸치료기를 개발중이다”고 소개했다. 제품은 온도와 열 투과 깊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간단한 기계 조작으로 한번에 10여 곳의 혈자리를 동시에 자극하는 장점이 있다. 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임상시험을 거쳐 내년쯤 상용화될 전망이다.

뜸의 치료효과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의료연구부 이명수 박사는 지난해 51명의 폐경기 전·후 여성을 비교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4주간 14회의 뜸치료를 했다. 그 결과 뜸을 뜬 그룹에서 안면홍조가 나타나는 빈도와 강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박사는 또한 출산 전 태아의 위치가 잘못된 여성에게 지음혈(새끼발가락 발톱뿌리에서 1∼2㎜ 아래쪽)에 뜸을 떴더니 태아의 위치가 바로 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월경통 감소효과도 증명됐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팀은 월경통으로 최소 3개월 이상 진통제를 복용한 18~30세의 여성 52명에게 8주간 매일 7개의 혈자리에 뜸치료를 하게 했다. 그 결과 치료 전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월경통이 줄었다는 것이다.

경혈 자극해 자연치유력 높여

뜸은 쑥과 같은 약재를 몸의 일정 부위(경혈)에 올려놓고 연소시키는 것이다. 뜸의 열 자극과 약재의 화학적 작용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요법이다.

CHA의과대 전세일 대체의학대학원장(재활의학)은 “우리 몸에는 자연치유력을 높일 수 있는 반응점, 즉 경혈이 있는데 이를 자극하면 면역기능에 작용하는 세포인 백혈구와 림프구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인체의 원리를 이용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경혈을 바늘로 자극하면 침, 압력은 지압, 음압은 부항, 열로 자극하면 뜸이다.

뜸은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된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 불에 몸을 가까이 댔더니 아픈 부위가 따뜻해지면서 통증이 줄어들었던 경험을 치료법으로 응용했다. 이재동 교수는 “약 2000년 전 쓰인 동양의학서『황제내경』에 뜸의 치료원리가 나온다”며 “뜸은 철제가 발달해 침술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를 치료하는 보편적 의술로 자리 잡아 왔다”고 설명했다.

초기 뜸의 재료로는 나뭇가지가 사용됐다. 이후 차츰 부드러운 풀을 이용하게 됐다. 특히 강한 생명력으로 가뭄에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불에 잘 타는 쑥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쑥의 효능에 대해 허준 선생은『동의보감』에서 ‘쑥은 여러 가지 오래된 병과 복통에 효과가 있으며, 여성에겐 임신을 하게 하고, 하혈을 막아 유산을 예방한다’고 했다. 이 같은 뜸의 효과와 이론·실행법·금기사항 등을 두루 담은 동의보감은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글=이주연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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