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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할리우드에서 … 잊혀진 전쟁 새롭게 조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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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08면

6월에 개봉할 영화 ‘포화 속으로’. 1950년 8월 포항의 학도병 71명이 인민군 유격대에 맞서 전투를 벌인 실화가 소재다. [태원엔터테인먼트 제공]

“땅 따따다다다 따다다다.”

6·25 60주년, 블록버스터 전쟁물 제작 붐

19일 오후 경남 합천의 ‘합천영상테마파크’에 들어서자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들려온다. ‘태극기 휘날리며’‘에덴의 동쪽’ 등 시대극 여러 편을 촬영했던 곳이다. 지금 이곳에선 영화 ‘포화 속으로’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를 재현한 세트에서 보조 출연자 수백 명이 인민군과 국군의 전투 장면을 찍고 있다. 그 곁에 낯익은 네 명의 주연배우가 대기 중이다. 인민군 장교 차림의 차승원씨, 국군 장교 김승우씨, 검정 교복·교모의 학도병 권상우씨와 탑(TOP·아이돌그룹 ‘빅뱅’ 멤버)이다. 하나같이 땡볕에 그을린 듯한 얼굴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1950년 8월이라서다. ‘포화 속으로’는 국군이 낙동강 전선에 총집결한 가운데 포항을 지키던 나이 어린 학도병 71명이 인민군 유격대와 전투를 벌인 실화가 소재다.

촬영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탑은 자신의 출연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어린 팬들이 보인 반응을 전해 참석자들을 한바탕 웃겼다. “‘탑 학도병’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에 들어가 보니 ‘탑이 도대체 무슨 병에 걸렸느냐’는 댓글이 붙어 있었다”는 얘기다.

MBC가 방송할 16부작 6·25 드라마 ‘로드 넘버 원’. 사진은 주연 배우 소지섭. [로고스필름 제공]

6·25를 잘 모르는 게 어린 팬들만은 아니다. 차승원씨는 “이 영화를 보고 저 같은 전후 세대들이 그날의 참혹함을 기억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한 감독은 “착수할 때부터 이 영화의 노선이 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학도병 이야기인 만큼 북한군이 악역일 수밖에 없지만 이념이 아니라 인간을, 국군·학도병·북한군을 가능한 한 균형 있게 다루려 한다”고 말했다.

올 6월 개봉할 ‘포화 속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이후 오랜만에 등장하는 대규모 6·25 영화다. 마케팅비까지 합쳐 전체 제작비가 113억원이다. 탱크·총 같은 무기류는 국방부의 지원을 받았다. 6·25나 남북 관계를 다룬 최근의 영화가 대개 군의 도움 없이 제작됐던 것과는 크게 다른 상황이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도 지원을 요청했었지만 국방부가 강제징집 등 몇몇 장면의 수정을 요구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제작진이 “국방부 요구대로 하면 ‘배달의 기수’가 된다”고 반발했던 일화도 있다. 반대로 요즘 군 지원 등을 두고 반공영화들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포화 속으로’의 제작자 정태원(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요즘 그렇게 하면 아무도 영화를 안 본다는 걸 이제 국방부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만큼 어디서든 도움을 준다면 고마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 등에서도 지원받으려 했지만 특정 영화사를 지원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산됐다고 한다. 그는 “‘포화 속으로’는 반공영화가 아니라 동족상잔의 실화를 다룬 영화”라며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을 전 세계 참전용사에게도 영화를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올 초 독일과 수출 계약을 맺었고, 일본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 또 나중에 3D로 변환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일정상 6월 국내 개봉 때는 불가능하지만 해외 시장을 생각해 3D 변환을 시험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美 영화 ‘혹한의 17일’ 장진호 전투 다뤄
6·25를 흔히 ‘잊혀진 전쟁’으로 불러온 미국에서도 관련 영화가 만들어진다. 할리우드 신생 제작사 매드미디어엔터테인먼트가 준비 중인 ‘혹한의 17일(17 Days of Winter)’이다. 소재는 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미 해병대가 10배 규모의 중공군에 포위돼 전멸 위기를 겪은 전투다. 제작사 측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장진호 전투는 미국 내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기억하는 이들이 없지만 최근 기념박물관이 건립되고 장진호 참전용사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다”며 “한국전쟁 가운데 할리우드가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를 고민하다 찾아낸 전투이자 의미 있는 스토리가 무궁무진한 전투”라고 소개했다.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에 비하면 6·25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야전병원 매쉬’‘원한의 도곡리 다리’‘오,인천’ 등 극히 소수다. 제작사 측은 “장진호 전투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할리우드가 관심을 갖는 소재인 동시에 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의 희생을 통해 한반도 평화가 지켜졌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중요성 때문”이라며 “특히 흥남부두 철수는 장진호 전투의 희생을 통해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 반드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1억 달러(1100억여원)로 예상되고 있다. 대작이라는 점 외에 처음부터 3D로 촬영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3D로 촬영한 전쟁영화는 아직 선례가 없다. 제작사 측은 “특수효과로 도배된 영화를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며 “하지만 관객들이 자신의 얼굴로 눈이 날리는 듯한 입체 효과를 통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장병의 심정을 함께 느낄 수 있고, 폭격기가 눈앞을 지나가는 듯한 효과로 현장의 긴박감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혹한의 17일’은 앞서 3D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를 만들었던 에릭 브레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한국·뉴질랜드 등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TV 드라마는 ‘로드 넘버 원’ vs ‘전우’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올해는 TV의 6·25 특집극도 규모가 다르다. MBC가 방송할 ‘로드 넘버 원’(제작 로고스필름)은 130억원의 제작비를 들이는 16부작 드라마다. 소지섭·김하늘·윤계상 등이 주연을 맡아 사전제작제, 즉 방송 전에 모두 찍는 것을 목표로 한창 촬영 중이다. 갑작스레 참전하게 된 두 남자의 우정과 세월을 넘나드는 애정, 1번 국도를 중심으로 한국전쟁의 주요 과정을 그리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KBS도 20부작 ‘전우’를 준비 중이다. 7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라시찬씨가 연기했던 분대장 역할은 최수종씨가 맡았다.

충무로 안팎에서 기획 중인 6·25 관련 영화는 이 밖에도 여럿이지만 아직 사전 준비 단계인 것이 대부분이다. 달리말해 6·25에 대한 충무로의 관심이 올 60주년이라는 계기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영화투자사의 한 관계자는 전쟁물 제작 붐에 대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본다”며 “몇 편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관객과 얼마나 소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6·25영화는 60~70년대는 반공정신을 고취하는 국책영화의 일환으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관객들의 외면으로 한동안 맥이 끊긴 적도 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씨는 “상업적 매력이 별로 없었다는 의미”라고 풀이한다. 2000년대 들어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이들 외에 6·25를 직접 다룬 영화는 별로 없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장훈 감독은 최근 ‘의형제’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둔 데 이어 6·25가 배경인 100억원대 영화 ‘고지전’을 준비 중이다. 그는 “과거의 전쟁, 요즘 세대들이 잘 모르는 잊혀진 전쟁을 보여 준다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을 보여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남북 관계도 계속 진행 중인 문제이고, 6·25 자체도 (휴전 중이지) 끝난 전쟁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고지전’은 남북한 병사들 간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그리는 내용인데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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