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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동 동아APT 주민 모임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자, 제일 멋있게 사진이 나온 가족은…. "

정적 속에 엄마.아빠 손을 잡은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곧이어 "민수네 집!" 하는 순간 환호와 탄성이 뒤엉켰다. 봄날 아파트 단지 한켠에서 벌어진 동네 축제는 이렇게 무르익어 갔다.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동아아파트 단지 내 곳곳에선 조그만 잔치가 벌어졌다.

3백여 가족이 참여한 사진 콘테스트, 남녀노소 12명이 경합을 벌인 노래자랑, 1백명의 어린이가 참가한 도자기 굽기 체험 등 아파트 주민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열린 마당이었다.

무엇보다 이 축제에 가슴 뿌듯해 한 사람들은 주민모임 회원 12명. 대표 최민섭(40.한의사)씨는 "지난 겨울 눈을 치우기 위해 나온 주민들이 작업 도중 자연스레 친해지는 걸 보면서 '아, 이거구나' 하고 무릎을 쳤죠. 이웃을 사귀는 방법, 그것은 몸으로 부대끼는 것이었습니다" 고 말했다.

딱히 이름도 없는 주민모임은 지난 1월 결성됐다. 30~40대 직장인이 주로 사는 아파트 단지의 성격상 얼굴을 트고 지내던 한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힘을 모았다.

이들은 우선 인터넷 공간을 통해 주민들간의 의견교환에 주력했다. 홈페이지(http://www.jamwondonga.com)에 아파트 소식을 띄우고 불만사항이 올라오면 관리소에서 즉시 조치하도록 했다. 지난 2월에는 관리사무소의 노는 공간을 헬스클럽으로 바꿔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든 기간은 1개월. 회원들은 퇴근 후 양복 차림으로 매일 저녁 관리사무소 회의실에 모였다. 주말엔 주변 상가를 직접 돌며 십시일반으로 축제경비를 마련했다.

임형민(41.교수)씨는 음악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배우 오정해.가수 이승훈.무용단 '퓨전그룹21' 등을 초청했다. 콘테스트에 응모한 사진 확대는 프린터 회사에 다니는 강성수(37)씨가, 무대 설치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박길영(61)씨가 맡았다.

이처럼 회원들이 각자의 특기를 살려 마련한 아마추어 축제였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민 이성민(21.대학생)씨는 "주말이지만 밖에 나가지 않고 아파트 단지를 돌며 축제를 즐겼다" 며 "동네분들한테 인사하다가 옛 은사를 만나 너무 반가웠다" 고 자랑했다.

축제가 끝난 다음날 아파트 홈페이지에는 "축제를 열어줘 너무 고맙다" 는 글이 수십건 올라왔다.

"강남 사람이 깍쟁이라구요□ 우린 그런 것 몰라요. "

축제를 치르랴 뒷정리하랴 밤을 꼬박 샌 주민모임 회원들의 이구동성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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