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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사이버 교육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수업을 절반 정도 하면 강의를 멈추고 학생들에게 질문할 시간을 준다. "자, 질문. " 침묵이 흐른다. "어떤 질문도 좋으니까, 자, 주저하지 말고…. " 그래도 잠잠하다. "그럼 다 알아? 정말? 정말?" 이러면 여기 저기서 큭큭 웃음이 터지며 한두 학생이 쭈빗 손을 든다. 질문이 재미있으면 이를 다른 학생들에게 돌린다. "혹시 대답할 사람□" 놀랍게도 종종 좋은 대답이 나온다. 이렇게 질문과 대답은 쉽게 작은 토론으로 이어진다.

대학의 수업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질문과 토론의 기회를 가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학생들은 교수나 다른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좋은 수업은 교수가 학생들 이름을 기억하고, 질문과 토론을 할 때 학생 개개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극을 주는 수업이다. 수업을 이렇게 진행하면, 그 수업은 경쟁과 협동이 어우러진 작은 공동체가 된다.

이런 '수업 공동체' 는 전자우편이나 BBS를 사용해 보완.강화될 수 있다. 성격이 소심해 수업시간의 토론에 못 끼는 학생이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진행되는 온라인 토론에는 적극적일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좋은 아이디어를 BBS를 통해 공유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학 강의를 전적으로 원격 수업으로 대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학 교육의 핵심은 CD롬에 들어 있는 정보를 습득하거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에는 교실에서의 질문과 답변을 통한 상호작용, 토론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대학 교육이 테이프를 듣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공부하는 것으로 대체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이버 대학이 훌쩍 우리 코앞에 다가왔다. 북미의 경우 사이버 대학들은 일반 대학보다 조금 싼 학비를 받고 외국학생.직장인.대학 학비가 부담이 되는 가정의 학생을 주로 모으고 있다.

한국의 사이버 대학에 외국학생이 몰릴 것은 생각하기 힘들고, 재교육을 원하는 직장인과 연간 5백만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이 부담스러운 가정의 학생들이 대학의 주 '고객' 이 될 듯 싶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을 사용한 사이버 교육에는 분명히 이점이 있다. 학교에 등.하교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기 위해 뛰어갈 필요도 없다. 교수의 강의도 동영상에 텍스트를 겸비해 화려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한번 만든 좋은 강의는 여러 대학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고, 3~4년을 쓸 수도 있다. 이는 경비 절감을 낳고, 대학은 그 혜택을 학생에게 돌아가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컴퓨터로 동영상 강연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를 한 시간 지켜보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질문을 하라고 조르는 교수도 없고, 경쟁하거나 협동할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의는 자칫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학위를 위해 정보를 외우는 식이 되기 십상이다.

사이버 대학이 등록금이 부담이 되는 가정의 학생들에게도 대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반갑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사이버 대학만이 아니라 기존의 대학도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캠퍼스 수업과 온라인 기술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는 기존의 대학과 온라인을 통한 원격 교육에만 의존하는 사이버 대학과의 교육 격차는 벌어진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이는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지식 격차를 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얻은 확고한 교훈이 있다면, 사이버 세상은 실제 세상과 다양한 접점을 이루면서 존재할 때 양쪽 모두에 상승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교육이 어떻게 공동체의 느낌과 소속감을 전달할 수 있는가에 사이버 교육의 성패가 달려 있다. 학생을 생각한다면 이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홍성욱 교수 <토론토대 교수 ·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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