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신일본'] 上. 안보 우회전 '각도 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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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는 26일 취임하자마자 유사법제 정비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쟁 등 유사시에 자위대가 행동하는데 걸림돌이 없도록 관련 법규를 고치라는 것이었다. 나카타니 겐(中谷元)방위청장관은 한술 더 떠 "일본이 국제사회에 좀 더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며 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군(PKF) 참여도 시사했다.

고이즈미는 27일의 총리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도 "미.일 우호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양국간 안보조약을 운영하기 위해선 집단자위권 행사가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고이즈미가 자민당 총재에 당선된 후 한국.중국 등 주변국가들은 일본의 '우경화' 를 상당히 우려했다. 고이즈미가 총재 선거 당시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실현, 야스쿠니(靖國)신사 공식 참배 등 일본 우익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공언했기 때문이다.

일본 외교안보 정책 결정의 기본축은 '고이즈미 총리-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외상-나카타니 방위청 장관' 이다. 고이즈미는 자민당 내 매파다. 나카타니는 방위대를 졸업하고 4년간 육상자위관으로 근무한 '제복' 출신이어서 당연히 우파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일본 외교안보 정책이 우경화로 치닫느냐, 주변국을 고려하는 '균형외교' 를 펼치느냐는 다나카에게 달려 있다.

다나카의 외교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중.일 국교정상화를 이뤄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 총리의 딸이어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도다. 중국도 다나카의 외상 취임을 환영했다. 이 때문에 주변국에서도 다소 안심하는 눈치다.

그녀는 27일 우익 역사교과서 문제 등 주변국과의 현안에 대해 "각국 국민들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말했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에 대해선 "양국간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손상되지 않도록 하겠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헌법 해석을 변경해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은 고이즈미와 같다.

고이즈미의 정책이 '우경화' 로 치다를 것인가에 대해선 다른 의견도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도 총리가 되기 전에는 헌법 개정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총리 재직 당시에는 헌법 개정을 언급한 적이 없다" 며 "고이즈미도 총리가 된 후에는 균형있는 외교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실제로 고이즈미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와 관련, 27일 회견에서 당초의 '개헌 불사' 에서 '해석 변경' 으로 후퇴한 인상이다.

각료 17명 모두가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적으로는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도 고이즈미의 급격한 우경화 정책을 제어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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