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로마인의 사랑과 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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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목을 보면 희대의 폭군이자 엽기적 섹스 행각으로 각인된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와 네로가 우선 떠오른다. 저자도 그런 선입견을 의식했을까.

책은 네로 황제의 추행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사티리콘' .1969)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 그와 비슷한 예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황제의 딸이면서 창녀를 자처한 아우구스투스의 딸 유리아, 요녀로 낙인 찍히고 황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중결혼을 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황후 메사리나, 변태와 광기의 선두격이었던 칼리굴라 등. 그러나 책이 이런 호기심으로 일관할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이 책은 성(性)을 매개로 한 잡서(雜書)가 아니라 로마인들의 성의 행태를 주제로 그것에 관한 지금까지의 그릇된(혹은 오해된) 편견을 지적하려는 진지한 역사서다.

이를 위해 저자(일본 도쿄대 교수)는 사회사.생활사적인 방법론을 끌어와 권력화한 사관(실증사학)에 도전한다. 그래서 그는 실증사학의 주 텍스트인 타키투스의 『연대기』보다는 당대 추문작가였던 수에토니우스의 기록과 풍자시를 애용했다. 그 결과, 저자는 1천년 이상의 로마 역사 중 상당부분이 성에 탐닉한 황실의 행태를 인정하면서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한다.

저자가 특히 주시하는 시대는 키케로에서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이르는 2백여년(대체로 BC 1세기와 AD 2세기) 사이다. 저자는 이 때부터 로마인들에게 성을 '더러운' 것으로 보는 윤리의식이 생겼으며, 부부의 사랑에 기초한 가족관이 확립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로마인들이 향락에 도취돼 정신나간 듯 살다가 망했다는 식의 해석은 넌센스라고 주장한다. 로마인들의 성을 쾌락의 기술로서가 아니라 현상 그 자체로 대상화해서 보려고 한 결과다. 더불어 과거사를 오늘의 잣대로 재단해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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