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의 한심한 눈치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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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성(母性)보호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의 행태가 가관이다. 민주당 등 여권 3당은 법을 개정하되 시행시기를 2년 늦춘다는 어정쩡한 결정을 했고, 눈치만 보던 한나라당은 "빨리 실시해야 한다" 고 뒷북을 쳤다. 우선 2년 후에 시행할 법을 지금 서둘러 만들겠다는 여권 3당의 태도가 한심하다.

법은 그때그때 시대상황과 필요성에 따라 만들고 고쳐가는 게 정상이다. 몇년 뒤에 실시할 법안을 미리 만들어놓아 봐야 그때 가면 또 손을 볼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와 대선을 의식한 '여성계 점수따기용' 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국회가 수년 후 실시할 법안을 미리 제정했다가 별탈 없이 지나갔던 사례는 찾기 어렵다. 1994년 한의사와 약사간 분쟁의 산물로 5년 뒤 시행키로 약속했던 의약분업은 99년에 다시 1년 뒤로 미뤘지만 이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97년에 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5년 후인 2002년 1월 1일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사용자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해 놓았다.

그러나 지난 2월 노사정위원회는 이를 2007년으로 또다시 미뤘다. 이는 '선(先)제정 후(後)시행' 유형의 법안이 대체로 정치성 짙은 것이라는 증거다. 모성보호법안도 그런 전철을 밟는다면 당장은 이익단체의 압력을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더 큰 갈등과 불신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야당의 태도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엊그제 기자들이 모성보호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을 물었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성계와 노동계가 여권에 대해 반발하자 뒤늦게 반대성명을 냈다. 내년 선거를 의식한 소신없는 행태이기는 여당과 조금도 다를 바 없고, 스스로 대안없는 정당임을 입증한 꼴이다.

지금 시행하지 못할 법안이면 여성계와 노동계를 설득해 시행시기에 맞춰 제대로 된 입법을 해야 한다. 당장 시행해야 한다면 현실에 맞게 고칠 것은 고치고 재원마련책도 강구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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