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선관전평] 3-4-3 새 포메이션 고정관념 깬 선진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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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히딩크 감독이 새로운 포메이션과 전술적 시도를 한 이란전은 국내 축구 관계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 명문클럽 아약스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 있는 3-4-3 포메이션은 허정무 감독이 잠시 한국올림픽팀에 시도했다가 중도 폐기했던 선진형의 포메이션이다.

히딩크는 전반전에 수비수 3명, 미드필더 4명, 공격 3명을 포진시켰다. 이는 숫자상의 틀이 과거 허감독과 아약스가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작전이라 국내 전문가들과 언론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약스가 전통적으로 썼던 3-4-3은 공격라인에 원스트라이커를 꼭지점으로 좌우측에 윙의 역할을 하는 포워드 2명을 포진시켰던 반면 히딩크는 '섀도 스트라이커' 라는 생소한 단어를 도입, 김도훈.이동국 뒤에 윤정환을 삼각형 형태로 포진시키는 독특함을 시도했다. 윤정환의 역할이 바로 섀도 스트라이커였다.

윤정환은 언뜻 보기에 3-5-2 포메이션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흡사하지만 역할 수행은 사뭇 달랐다. 김도훈과 이동국이 상대 수비를 유도해 포지션을 엑스체인지할 때 생긴 공백으로 침투해 찬스를 만들거나 때에 따라 전술적 키맨으로서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이었다. 히딩크는 윤정환의 역할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국한하는 국내의 고정 관념을 깼다.

'히딩크 축구는 4-4-2' 라는 등식 아래 이를 모방하는 팀들이 많이 늘고 있는 시점에서 새로운 개념의 전술 구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모방' 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토털 사커라는 새로운 전술적 모델을 설파하고, 월드컵을 통해 화려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던 네덜란드 대표감독으로서 히딩크의 일거수 일투족은 국내 전문가와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히딩크의 전술을 논하는 김에 한가지 더 이야기한다면 홍명보가 결장한 수비 라인의 지휘자로 기용된 강철의 플레이도 히딩크의 '속도 축구' 와 관련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국내 프로 경기 관전 후 "한국 축구는 걷는 축구" 라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강철을 축으로 일자 백 시스템을 고집한 이면에는 히딩크의 축구 철학이 국내의 한정된 전술적 이해와 시도의 범주를 넘은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히딩크의 '워킹 사커' 라는 코멘트에 국수적인 반응을 보이는 국내 프로축구 감독이나 지도자들에게 히딩크의 새로운 전술적 시도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라고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히딩크에게 막대하게 투자되는 자금과 시간 등을 고려할 때 단순히 한 경기, 한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세계 축구의 전술적 흐름을 주도해온 네덜란드 축구를 한국 축구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자존심과 오기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3-4-3 포메이션의 새로운 공격 시스템은 필자에게도 선진 축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카이로〓본지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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