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 유울증' 봄이 오면서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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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당신은 '중년의 어두운 터널' 에 갇혀 있지나 않습니까.

봄볕이 따사로워지면서 우울증으로 정신과 문을 두드리는 중년 남성들이 늘고 있다. 늦은 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중년 남성의 우울증이 많다는 것은 역학조사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 자살 성공률이 여성이나 청소년보다 높은 것도 중년기 우울증의 특징이다.

고려대 의대 안암병원 이민수(정신과)교수는 "나이가 들면 갑작스런 계절의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데다 봄에는 자녀의 출가.이사.직급의 변동과 같은 생활사건이 많기 때문에 우울증이 늘어난다" 고 설명한다.

중년기 우울증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은 자신의 노화를 인식하는 것. 인생이 길지 않다는 것과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복합적으로 마음을 어둡게 한다.

인생 전반기에 가졌던 삶의 목표와 가치가 퇴색하는 것도 우울증을 부추긴다.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김광수(정신과)교수는 "실패한 사람은 다시 재기할 나이가 지났다는 생각 때문에, 또 성공한 사람은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은 불완전함과 허전함 때문에 우울증이 온다" 고 말한다.

중년에 겪는 다양한 생활의 변화도 이러한 위축된 심리를 부추긴다.

부모의 죽음과 자녀의 독립은 중년 남성이 겪는 가장 큰 생활 사건. 이민수 교수는 "남성은 밖으로 향하던 야망과 관심을 내면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성은 오히려 외부 활동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독립성이 강해지면서 부부관계에도 새로운 기류가 형성된다" 고 말한다. 과거와 다른 아내의 모습, 가족 해체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이 시기라는 것.

기복이 심한 나라 경제에 대한 불안, 노후와 건강에 대한 걱정, 불안정한 직장생활도 우울증의 요인이다. 게다가 자신감과 성력의 원천인 남성호르몬의 감퇴도 한몫을 한다.

이민수 교수가 우울증과 생활사건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0대 남성은 자녀교육과 사업 및 경제적인 문제가 많았고, 50대는 부모.친척의 죽음, 건강.부부관계가 우울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러한 우울증이 자살까지 가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것. 김광수 교수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자 중 80%가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중년 남성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다" 고 밝힌다.

중년남성의 대표적인 자살유형은 자기응징과 현실도피.

인생의 목표가 좌절된 데 대한 자책감과 현실에 대한 탈출구로 죽음을 선택한다. '반전(反轉)살인' 도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배신한 사람(혹은 직장이나 사회)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살을 통해 상대를 죽이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이러한 중년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민수 교수는 "막다른 길에 맞닥뜨려서도 '길이 끝난 것 같이 보이는 곳에 다시 길이 시작된다' 는 생각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고 조언한다. 항상 지나간 삶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도전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는 것.

주변에 정신적인 지지자를 많이 얻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심각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살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렇다고 '힘 내' 와 같이 상대방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는 형식적인 위로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물론 비난하는 것은 절대 금물.

이교수는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 장애도 정신과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의 선택" 이라며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과 심리요법, 환경 개선을 통해 중년의 터널을 빠져 나갈 것" 을 권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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