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방공기업 구조조정 왜 나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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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방공기업에 메스를 들이댄 것은 최근 10여 년 동안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상황에서 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가·지방 공무원, 국가 공기업에 이어 마지막 단계로 지방공기업을 정리하는 것이다. 1969년 지방공기업법이 제정된 이후 정부는 해마다 지방공기업을 대상으로 경영평가를 해 왔으나 청산이나 통·폐합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든 것은 처음이다. 지방공기업 가운데 청산된 것은 2008년 전남 장흥군의 표고유통공사가 유일하다.

지방공기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운영하는 기업으로 늘어나는 행정수요를 해결하면서 지방행정기관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설립 권한이 행정자치부 장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넘어간 1999년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설립 인가권이나 사장 임명권 등을 자치단체장이 쥐면서 민선 광역자치단체장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들도 수익사업 등을 명분으로 앞다퉈 설립했다. 여기에다 일부 자치단체장은 당선에 기여한 사람들이나 퇴직 공무원에게 감투를 주기 위해 위인설관(爲人設官)식으로 만들었다. 지방공기업의 숫자는 2000년 272개였으나 현재는 406개로 크게 늘었다.

그 사이 지방공기업은 부실·방만한 기업의 대명사가 됐다. 2008년 감사원은 지방공기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민간영역에 불필요하게 진출하고 불필요하게 조직을 늘리거나 직원들에게 복리후생비를 과다하게 지급함으로써 지방재정을 축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8년 말 기준으로 지방공사·공단 가운데 30개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당기 순이익이 392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부실 공기업을 내버려두면 지역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가 강도 높은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이행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지방공기업의 주인은 지방자치단체여서 중앙 정부가 강제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헌율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세제국장은 “경영개선 명령을 받은 공기업과 기초지방자치단체가 1개월 이내에 이행계획을 수립하면 주기적으로 이행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대상 공기업의 전체 정규직 정원이 4100명에 이른 데다 비정규직도 1600여 명이나 돼 경영개선 과정에서 고용 문제를 둘러싸고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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